자유는 천부적 권리가 맞나?

by 청윤 단남

공교롭게도 3.1절에 백신패스가 잠정 중단됐다. 백신 패스가 풀리기 불과 일주일 전 짝꿍과 둘이서 음성 증명서를 발급받고 그냥 훌쩍 속초로 떠났을 때의 이야기다.


참 우스웠다. 당연하기만 하던 것들이 박탈된 일상에서 다시 그것을 되찾기 위해 긴 줄을 서거나 병원에서 돈을 내고 코를 내어주어야 한다는 사실이. 5분 남짓 기다리면 나오는 쑤심의 결과에 따라 내 행보에 자격이 부여가 된다는 작금의 현실이 참으로 우스웠다. 코를 쑤시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누군가를 데리고 식당이나 카페를 출입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코 한번 쑤시니 나에게 일시적 자유가 주어졌다. 그것도 24시간이라는 제한된 자유가. 헌법에 정의된 국민의 자유는 어디로 갔나?


그러게 그냥 말 잘 듣는 시민이 되어 주사 한방 따끔하게 맞으면 되지 뭘 그리 불편하게들 사느냐는 말은 얼마든지 해도 된다. 무엇이든 말할 자유는 있어야지. 하지만 그런 사고의 기저에 깔린 대전제가 무엇인지 당신이 알길 바란다. 일상에 조금만 불편함을 주고 공포를 심어주면 넙죽 엎드려 개인으로서의 존엄성과 자유를 반납하기로 한 선택의 대가가 얼마나 클지를 알길 바란다. 공공의 편익이라는 명분 앞에의 일시적 굴종은 지금 우리가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결코 당연하지 않을 모습으로 되돌아올지도 모른다.

속초 문우당서림

여행 중 우연히 들렀던 어느 멋진 지역 서점에서 한 권의 책에 눈길이 갔다. 평소엔 내가 무슨 책을 사든 크게 관심을 갖지 않는 애인이 이 날은 무슨 일인지 그 책에 관심을 갖고 작가의 프로필을 검색해 보았다. 마침 그분이 개인 블로그에 업로드한 지 1일이 채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글이 올라와 있었다. 본인의 저서 판매 활동을 비롯하여 모든 활동을 즉시 중단하겠노라는 내용의 글.


당황스러웠다. 이제 막 책을 통해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참이었는데 돌연 활동 중단이라니. 그 배경은 내가 코시국이 터진 이래로 쭉 느껴온 막연한 찝찝함과 연관이 되어 있었다. 내가 속초를 간 것, 여행 계획에도 없던 서점에 들러서, 올 상반기엔 책 좀 그만 사야지 했던 결심이 무색하게 책 한 권을 홀린 듯 구매한 것, 그리고 그날 해당 작가가 돌연 자신의 활동 중단을 선언한 것. 모든 것이 나를 그리로 인도한 것처럼 흘러가는 듯했다.


혼란스럽다. 나는 그저 사랑하는 이와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고 싶을 뿐이다. 모든 이들이 각자만의 신념과 땀과 눈물을 쏟아부은 것들을 서로 존중하며 상생하며 살아가고 싶었다.


긴 시간은 아니지만 자유를 박탈당해 보니까 더욱 이런 작고 당연해 보이는 것들이 결코 작거나 당연하지 않음을 알게 됐다. 속초의 해변과 파도를,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 커플들과 가족, 친구들을, 서울에 비해 굉장히 작은 이 도시에 자신만의 색채를 온전히 드러내고 있는, 저마다의 삶을 치열하게 살아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의 터전이. 모든 것이 그저 아름답고도 한편으론 슬프게도 느껴졌다. 그것이 영원불변한 고정적인 것들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의 모든 배후에는 이러한 평범한 일상의 향유를 막고자 하는 존재들이 언제나 존재해 왔음을 간과하고 있었다. 그에 대해 나 역시 제대로 파헤쳐볼 여력도 없었고 의지도 없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은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을 것 같고 그래서도 안 될 것만 같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인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봐야겠다. 너무나도 막막하고 앞이 캄캄하지만. 결국에는 사랑만이, 선의만이 모든 것을 구원할 희망이라고 믿으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언제나 당연하게 그 자리에 늘 존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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