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 이유를 찾으려는 것도 병입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해보자구요

by 청윤 단남

작년 2월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서 꾸준히 다니다가 12월에 백신 패스로 인해 더 이상 못 다니게 됐었다. 그 후 2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다행히 학원은 백신 패스 적용 대상에서 제외가 되어 2월부터 다시 학원에 등록할 수 있었다.

사람 심리란 게 참 간사하다. 1년 가까이 빠지지 않고 잘 다녔던 피아노인데, 고작 2달 쉬었다가 다시 등록하려고 하니 안 나가던 돈이 나가는 것 같아 갑자기 부담스러웠다. 급기야 스스로에게 '과연 내가 처음 피아노를 배우려고 했을 때만큼 피아노를 좋아하고 있나?' 하는 질문까지 해보게 됐다. 남들로부터 뭐 하나에 꽂혀서 시작했다가 금세(1년 정도 했으니 금세라고 하긴 어렵지만) 그만두는 놈이라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서 오기로 다니려고 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니 잠깐,
왜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나 자신을 설득하고 있는 거지?



나는 내키지 않은 어떤 행동을 하면서 그것을 합리화하기 위해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무언가가 그저 하고 싶은데 거기에는 정당한 이유나 명목 같은 것이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이유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피아노를 왜 배우는지 명확한 대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단지 처음 배울 때부터 딱히 특별한 이유 같은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배워보고 싶으니까 배웠지!



영혼의 목소리, 순수하게 무언가를 열망하는 그것은 논리와 이성으로 무장한 마음보다 목소리가 작고 명확하지 않아서 알아차리기 어렵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뭔가가 그냥 끌리고 궁금하고, 해보고 싶고, 자꾸 눈길이 간다거나 주변에서 종종 관련된 신호들이 알게 모르게 자꾸 포착된다거나 하는 등. 이런 것들이 우리 영혼이 무언가에 반응하는 방식이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반응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소중한 신호를 놓치고 만다.


우리는 왜 늘 이유를 찾고 정당성을 찾으려 할까? 조금만 살펴보면 여기엔 하나의 관념이 작용함을 알 수 있다. '시간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 '취미든, 일이든 무언가 하나에만 진득하게 몰두해야 한다. ', '스스로의 몸값을 높이는 일에만 시간을 쏟아라.' 등등. 모두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주변 사람들로부터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듣는 말이다. 어쩌면 오늘 당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무심코 던진 말일 수도 있다.



삶에 있어 무엇이 가장 소중한 가치라고 생각하십니까?



누군가 자신을 인터뷰하면서 이런 질문을 건넨다면 대부분은 사랑, 우정, 가족, 행복, 건강 등 어찌 보면 뻔한, 그러나 그것이 뻔한 것에는 이유가 있는 그런 가치들을 반사적으로 떠올릴 것이다. 그러나 정작, 매일 반복되는 우리들의 일상을 되돌아보면 그렇게 소중하다고 본인의 입으로 말하는 그런 가치들은 언제나 삶의 우선순위 밖에 둔 채 살아가기 바쁘다. 먹고살기 힘들고 바쁘니까. 모두가 '열심히 살아야 한다.'를 가슴속 정언명령처럼 소중히 품고 살아간다. 게으르면 소가 된다거나, 겨울철에 식량이 없어서 힘들어 한 베짱이 얘기를 들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열심히'가 가리키는 구체적인 범위는 시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 많이 벌고 남들이 알아주는 무언가를 하라는 것일 때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따뜻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게 '열심'을 외치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행복, 사랑, 우정 등 누구나가 소중하게 여길 법한 바로 그것이라는 점이다.


ge906b38ff42aebc0b46ff152677836891c5d9881e6d2bfd4c0e4db2e8d9027480101a823c22.jpg © quangle, 출처 Pixabay


미국 뉴욕에 사는 한 사업가가 코스타리카 해변으로 휴가를 갔다. 해변에서 만난 어부에게서 생선 몇 마리를 샀는데 그 맛이 기가 막혀 다음 날 또 갔더니 어부는 오늘 잡은 생선은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먹을 것만 남기고 다 팔았다며 다음에 오라는 것이었다.


사업가는 어이가 없었다. 이렇게 맛있는 생선을 매일 몇 마리만 잡아서 팔고 나머지는 식구들과 나눠 먹고 말다니. 사업가는 어부에게 말했다."나와 동업합시다. 당신은 생선을 지금보다 더 열심히 잡고 내가 마케팅을 하면 5년 후 큰 배를 살 수 있고 공장도 세울 수 있습니다. 원한다면 당신만의 브랜드도 갖게 될 거예요."


"그렇게 돈을 많이 벌어서 뭐 하게요?"라고 어부가 묻자 다시 사업가가 대답했다.


"좋잖아요. 억만장자가 되면 멕시코의 한적한 해변에 별장을 짓고 가족들과 여유로운 생활을

만끽하는 거죠. 배부르면 낮잠을 자고 저녁엔 친구들과 기타를 치면서 노는 겁니다. 생각만 해도 천국 같지 않나요?"


"이봐요, 지금 내가 이미 가족들과 여유롭게 살며 배부르면 낮잠을 자고 저녁엔 친구들과 기타를 치며 놀고 있지 않소.'





물론 개인의 '노오오력'을 강조하는 것이 비단 오늘날에만 해당하는 시대정신인 것은 아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스스로를 갈고닦는 행위는 언제나 고결하게 여겨져 왔다. 그러나 인생의 거의 대부분이 태어날 때부터 상당 부분이 정해져 있었던 과거 신분제 사회와 달리 요즘 세상은 더 개방된 사회다. 특히 기술의 개발 속도가 워낙 빨라서 세상이 변하는 속도를 쫓아가기에도 벅찬 것이 현실이다. 이토록 변화를 쉬이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만의 '개성'을 찾는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개개인의 고유한 빛이 모이면 그것이 바로 다양성으로 넘치고 풍요로운 사회를 만드는 근간이 되어줄 것이다.


개성은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의 시간이 없이는 찾을 수 없다. 다른 말로는 개개인의 고유한 영혼의 빛에서 비롯되는 사회의 다양성은 서로가 서로를 채찍질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신이 자신을 채찍질하는 풍토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가장 빠르고 또 자연스럽게 얻어진다는 것이다. 모두가 '이러해야만 한다'는 어떤 '정답'을 정해두고 맹목적으로 한 곳을 향해 우르르 몰려가는 것 대신,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의 내면을 찬찬히 살핀 뒤 그 영혼의 미미하지만 분명한 소리가 이끄는 대로 과감하게 자신만의 항로를 개척할 때 인간은 비로소 저마다 타고난 고유한 개성에 따라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이것이 가장 '나다운 삶'이다.


위에 인용한 이야기 속 멕시코 어부처럼 자신이 중요시 여기는 삶의 가치를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이라는 먼 미래로 계속해서 미루기만 하는 것이 아닌, 지금 바로 여기에서 실천하는 삶,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태도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사회에서 세뇌에 가깝게 주입당한 거짓 가치 말고, 진짜 자기 자신이 원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이 우리에겐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스스로 '자유의지'를 가진 자유로운 시민이라고 믿고 살고 있다. 바쁘게, 자신이 소중하다고 역설한 가치들은 언제나 뒤로 끊임없이 미루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고 싶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그런 챗바퀴에서 빠져나오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식적으로 삶에서 '잠시 멈춤'의 시간을 가져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가장 먼저 잠시라도 챗바퀴에서 내려올 수 없게 만드는 '할부'라는 유혹에서 벗어날 줄 아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우리 모두에겐 한 때 날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