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간단남 Apr 29. 2022

대체식품은 '무엇'을 대체하나?

채식주의자를 위한 계란 대체식품, JUST Egg를 먹다 떠오른 단상

야, 나두 이제 계란찜 해 먹을 수 있어! (출처: Just Egg 공식 홈페이지)


최근 식물성 대체 계란 JUST Egg가 국내에 상륙했다. 


깔끔한 디자인의 병에 담긴 연노랑색의 내용물은 흡사 계란물을 떠올리게 한다. 놀라움은 요리를 해봤을 때 더욱 커진다. 감사하게도 몇 병 선물을 받아 '계란 없는' 계란말이를 해 먹었는데, 비주얼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식감과 풍미에서 큰 차이를 느낄 수가 없었다. 계란을 일일이 까야하는 불편함에서도 자유로워져 훨씬 편리하기까지 하니 그야말로 혁명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딘가 기분이 개운하지가 않았다.

우연히 제품을 뒤집어 식품 성분표를 확인하자 비로소 그런 기분을 느낀 이유가 명확해졌다.



JUST Egg 식품 성분표. 좌:스크램블 버전, 우:오믈렛 버전 (출처: JUST Egg 공식 홈페이지)




뭐가 이렇게나 많아?


한눈에 알아보기도 힘든 여러 가지 성분들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보자 지금 내가 먹은 것이 과연 음식이 맞기는 한 건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정도면 사실 가공 식품 치고는 성분이 깨끗한 축에 속한다. 눈을 크게 뜨고 그나마 '식품'으로 보이는 재료들을 드문드문 손을 짚어가며 살펴보니 구성은 보기보다는 단순했다.


녹두 단백 + 전분(타피오카 or 옥수수) + 향료 및 색소(계란 같은 색과 풍미 연출) + 각종 혼합제제 (잘 섞이게 하기 위함) +@ (오믈렛 버전에만 들어간 데코레이션용 야채 극소량과 팽창제)  


신선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저스트 에그는 냉장 보관이 권장되며, 유통기한은 15일로 비교적 짧은 편이다.

그럼에도 식품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난해한 각종 성분들의 이름을 읽고 있노라면, 과연 장기적으로도 건강에 이상이 없을지에 대한 의문을 지우기는 어려웠다.




대체식품이 처음도 아닌데

 

대체식품을 이번에 처음 접해본 것도 아니었다. 올해로 채식 4년 차에 접어들기까지 다양한 대체식품들을 먹어봤고 최근까지도 종종 이용해 왔다. 채식을 시작하면서부터 식탁에 올리지 않게 된 여러 음식들을 구현해내는 다양한 대체식품들을 보면 어떻게든 답을 찾아내는 인간 불굴의 정신에 대한 감탄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왜 하필 JUST Egg를 먹고 불현듯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저스트 에그만의 특별한 단점 같은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건강에 더 안 좋은 성분들로 만들어진 대체식품들도 많다. 게다가 저스트 에그에 들어가는 재료들은 비록 다 외국산이지만(해외 제품이니 당연하다) GMO도 쓰지 않았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상에서 대체식품에 대한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수준 이상이 되면서부터 이 문제에 대해 나도 모르게 조금씩 천착해왔던 것 같다. 저스트 에그는 단지 이러한 고민의 항아리에 가득 차서 넘쳐흐르기 직전인 물의 표면 위에 떨어진 마지막 한 방울이었을 뿐이다.





대체식품은 '무엇'을 대체하는가


계란의 대용품이 되기 위해서 갖춰야 할 것은 그것의 모양과 식감과 풍미만이 아니다.

그것을 섭취하지 않음으로써 잃을 수 있는 것을 올바른 방식으로 대체하고 있는지 살펴봐야 마땅하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제 아무리 원본과 거의 흡사하게 구현이 되었다고 한들 다 무슨 소용인가.


대체식품을 택함으로써 생명 착취, 환경 파괴 등의 문제 해결에 분명 이바지 하는 바가 있겠지만, 잃는 것도 존재할 것이다. 영양분을 예로 들 수 있다. 계란 대신 저스크 에그를 선택함으로써  제대로 된 대우도 받지 못하는 '산란계 (식용이 아닌 계란 생산 목적으로 기르는 닭)'의 착취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계란에서 얻을 수 있는 영양분 중 일부는 더 이상 얻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계란으로 얻을 수 있는 주된 영양분을 단백질이라고 단순하게 가정해 보자. 만일 저스트 에그도 녹두에서 추출한 단백질을 넣어서 단백질이 충분히 있다고 하니 문제가 없다고 한다. 정말일까? 거기에 더해 계란은 콜레스테롤이 많은 반면, 저스트 에그에는 없으니 저스트 에그가 무조건 더 건강하다고 한다.



인간의 건강을 단백질, 콜레스테롤 단 두 영양소로 설명할 수 있을까? (출처: JUST Egg 공식 홈페이지)



'자연'에서 나온 식재료에 존재하는 영양성분은 무수히 많다. 그중에 과학 실험실에서 밝혀낸 일부 영양소만을 그 식품의 '대표' 영양소로 인식할 뿐이다. 따라서 인간이 공장에서 만들어 낸 식품과 자연에서 나온 식품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한다는 것 자체부터가 어불성설이다.


오렌지에 비타민 C가 존재한다고 해서 비타민C 영양제로 오렌지를 대체할 수 없다. 오렌지의 모양과 식감, 맛까지 똑같이 흉내 내어 만든다고 해도 우리 눈과 혀를 속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영양분의 소화흡수에 관여하는 여러 장기들까지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 몸은 이런저런 부품을 조립해서 만든 기계가 아니다. 따라서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마땅하다.


대체식품을 대함에 있어서 그것이 기존 식품의 빈자리를 정확히 대체하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각자만의 '무엇'을 정의하기


경제학적 관점에서 대체재는 개인의 상황이나 환경에 따라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대체재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겐 보완재가 될 수 있다. 이렇듯 우리 스스로가 브랜드에서 내세우는 상업 논리를 그대로 따르기 이전에 먼저 자신이 해당 제품을 통해 무엇을 대체하고자 하는 것인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대체의 범위를 세분화해서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는 영양학적 대체이고, 또 하나는 형태론적 대체이며 마지막 하나는 신념론적 대체이다. 사실 시중의 대체식품들은 맛과 풍미의 모방이라는 형태론적 대체를 최우선시하고 있으니 이것은 논외로 한다. 남은 것은 영양학적 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비건 또는 채식을 지향하는 각자의 가치에 맞는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우선 자신이 채식을 함으로써 먹지 않게 된 그 음식을 영양적으로 충분히 대체할 가치가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제외한 그 식품을 통해 주로 섭취됐던 영양소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건강해야 맛도 즐기는 것 아니겠는가? 건강을 위해 맛을 포기한 삶은 재미는 없어 보여도 해롭진 않지만, 맛을 위해 건강을 포기한 삶을 산다는 건 썩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신념에 대해서 역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왜 비건 또는 채식을 하는가?'라는 대답에 대한 스스로의 답이 대체 식품을 선택함으로써 위배되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한다. 가령, 고기 대신 유기농 국산콩 100%로 만든 두부를 선택할 수도 있고, GMO가 포함되었을지도 모르는 외국산 콩과 각종 식품첨가물이 뒤섞인 대체육을 선택할 수도 있다. 환경은 모르겠고, 동물 생명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두 선택지는 아무 차이가 없다. 그러나, 환경을 위하는 것도 채식의 이유라면 대체육보다는 두부를 선택하는 편이 신념에 모순이 발생하지 않는 길일 테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대체식품의 종류와 수가 다양해지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일이다. 하지만 생명 윤리와 생태주의를 모두 고려하는 비건/채식의 취지를 생각했을 때 자본이 내어놓은 제품을 소비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경각심을 갖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금 우리의 관계는 틀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