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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May 17. 2022

[주간단남] 5월 2주 차 아침 생각

22.05.08(일) - 22.05.14(토)

[주간단남] 시리즈에서는 제가 매일 아침 30분 가량 글명상을 했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고 나누고 싶은 내용을 공유합니다.

발췌한 문장들은 제가 적었던 문장을 수정하지 않고 그대로 가져오는 것입니다. (맞춤법 오류, 비문 등 많을 수 있음)

굵은 글씨로 표시한 문장은 제가 새롭게 깨달았거나 꽂혀 있는 '생각'을, 밑줄 친 문장은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을 표기했습니다.



무의식은 언어적 표현을 통해의식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페터 비에리, <자기결정> 中





22.05.10 (화)



(..)

알아차려야 한다. 지금 인생이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내가 내뱉은 말도 스스로 지키지 못하고, 그리고 내 몸 하나 제대로 간수도 못하는 쪽으로 자꾸 삶의 트랙이 서서히 옮겨가고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

그렇다고 믿어라. 그러면 정말로 그렇게 될지어니. 내가 나 자신을,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천지차이가 되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관찰자 효과를 이용한 현실 창조이다.


(..)

세상이 정말 나의 의도대로 움직여 간다는 것을 말로만 그럴싸하게 지껄이지만 말고 내가 몸소 직접 체험을 해보자.


(..)

루틴으로 가득 찬 일과를 다시 가꾸어 나가자. 내 의도대로 삶이 선순환을 그리며 상승세에 올라탄 기분을 다시금 느껴보자.


(..)

사람이 자꾸 자신이 내뱉은 말을 스스로 어기는 모습을 보여주면 어느 순간부터는 참 가벼워 보인다. 나는 요새 매일 아침마다 스스로 가벼워 보이기를 택하고 있는 셈이다.


(..)

나는 나 자신을 매 순간 더욱 깨어있는 의식으로 바라볼 것이고, 이것이 내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진심으로 선언할 것이다. 모닝 페이지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은 성스러운 의식이다. 내 하루라는 거울을 닦는 정화의 행위이자, 그렇게 해서 맑고 투명해진 거울이 비춰주는 것을 통해 창조성과 영감을 회복하는 시간인 것이다.


(..)

사람의 마음은 쉬이 혼탁해진다. 양치를 단 1회라도 하지 않으면 치아에 플라크가 끼듯이 마음을 닦는 이와 같은 행위를 단 하루라도 하지 않으면 마음에 때가 끼기 시작한다. 이것은 매일의 내 하루를 지탱해 주는 대들보와도 같은 역할을 해준다.


(..)

최근에는 만보를 걸으며 강의를 듣는 것까지 추가가 됐다. 모닝페이지, 명상, 그리고 만보 걷기까지. 내 하루를 견실하게 지탱해 줄 이 루틴 3대장을 꼭 5월 안에 습관으로 세팅시키자.


(..)

선언하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단히 현재와 의사소통을 이어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

삶은 내게 꼭 필요한 것만을 경험하게 한다. 지금의 리듬이 망가진 생활 역시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 산을 넘어 더 큰 존재가, 더 단단한 뿌리를 가진 존재가 되라는 삶의 전언인 셈이다.


(..)

관찰자 효과를 제대로 이용하려거든 그것이 지금 당장 가능한 일이라 생각하라. 나는 된다. 글을 쓸 때 나는 작가가 되고, 명상할 땐 깨달은 자가 되며, 활을 쏠 땐 신궁이 되고, 피아노를 칠 땐 연주자가 된다. 스스로를 한계 짓는 것은 외부의 환경이 아니라 뿌리 깊게 박힌 내 내면의 고정관념뿐이다.




22.05.11 (수)


(..)

의식적 행위가 습관이 되어 무의식 차원이 되었을 때 변화가 일어났다고 이야기한다.

(..)

변화는 우리가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 미립자 차원에서부터 눈에 띄지 않는 속도로 천천히 일어난다.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것을 그냥 믿고 또 그냥 알라. 믿으면 알게 되고, 알면 또 믿게 된다. 그렇게 둘은 선순환을 이루게 된다.




22.05.12 (목)


(..)

무언가를 순수하게 믿기란 참 어렵다. '에이, 설마~' 하는 마음, 그리고 기존의 고정관념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 그 자리를 다른 새로운 것으로 채운다는 것은 굉장히 깊은 마음을 필요로 한다. 대부분은 마음이 발달함이 없이 얕기 때문에 무언가를 진심으로 믿는 데는 어떤 확실한 증거와 결정적인 사건 등이, 혹은 최소한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

관찰자 효과는 그 사람의 순수함의 정도에 비례한다. 아직은 머리로만 알고 있고 가슴으로 알지는 못하는 나로서는 그 효과가 드러나는 수준이 미미하거나 전무하다시피해서 어느 정도의 수련이  요구된다.

(..)

바라본다는 것은 그것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것이 충분히 일어남직한 감정이라는 듯이 그것을 유발한 그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단 제3자를 관찰하듯이 스스로를 관찰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만 해줘도 어느 순간 그 감정이 서서히 가시는 것을 볼 수 있다.

(..)

이렇듯 같은 상황에 놓여도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생각에 따라 그것을 받아들이고 대하는 방식에 차이가 생긴다. 결과 역시 그에 따라 상이해지고,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 서로 다른 삶의 양상을 만들어 낸다. 삶은 우리가 내리는 선택들이 쌓여 만들어진 것이고, 그 선택을 만드는 것은 우리가 품고 있는 생각이라면, 결국 생각이 현실을 창조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귀결로 이어지게 된다.

삶을 바르게, 자신이 의도한 방향대로 흘러가도록 하기를 원한다면, 나 자신부터가 늘 내면에 올바른 생각들을 지니고 있는지를 잘 살펴봐야 할 것이다.




22.05.13 (금)


(..)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사소한 것 하나라도 대충 하지 않고 그 순간에 머물면서 열과 성을 다 하고 있는가? 현존한다는 말이 단순히 이따금씩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기만 하면, 그러면 끝인가? 더 이상의 여지는 없나? 나에게 던져진 그 화두는 이제 제법 안정된 내 일상에 변화의 새 바람을 일으킬 필요가 있음을, 한 단계 더 레벨 업할 여지가 생겼음을 자각하게 만들었다.

(..)

감정을 인정하고 알아차려 준다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의, 상대의 그것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논리다. 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응당 타인의 감정 또한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

일상 속에서 이따금씩 찰나와 같은 깨달음을 주는 것들이 있다. 가령, 어느 매장의 아르바이트 분이 입고 있는 티셔츠의 뒷면에 쓰인 '이들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입니다.'와 같은 문구가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그것은 상호 연대의 순간적인 회복이요, 찰나와 같은 깨달음을 준다. 결국 우리 모두는 상호 연결된 존재라는 것을, 그저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라는 상업적 맥락의 갑을 관계가 자아낸 연결성의 차단, 인간성의 상실, 그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

좋고 나쁜 감정이 따로 있지 않다. 우리 내면에 느껴지는 감정들엔 다 이유가 있다.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내면이 갈증에 물을 제공하는 것, 그것이 감정에 관한 한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이다.






[주간단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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