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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간단남 Oct 19. 2021

스마트폰도, 대화도 없이 열흘... 이걸 왜 하냐면요

휴대전화도, 읽을거리도 없었다, 일기를 쓸 수도, 메모조차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말도 할 수 없다. 10일간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밤 9시 30분에 취침에 이르기까지 오직 명상과 휴식만이 반복될 뿐이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스님들의 하루를 묘사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지극히 평범한 내가 참가했던 10일짜리 명상 코스 체험에 관한 이야기다.




그냥 쉬고 오는 건 줄 알았는데


명상 센터 하면 인도나 동남아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국내에도 명상 센터가 있었다. 전라북도 진안군 마령면 소재의 한 명상센터에서는 명상을 제대로, 그것도 무료로 배울 수 있는 코스가 주기적으로 열린다. 나는 지난 4월 7일부터 4월 18일까지 10박 11일 동안 코스에 참가했었다.

남들은 내가 10일간 명상하러 간다고 하면 '힐링하고 오겠네. 부럽다', '잘 쉬고 와' 등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렇지만 나는 이 코스가 그저 빡빡한 세상살이에서 잠시 벗어나 조용한 곳에서 쉬고 오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나는 수행을 하러 가는 것이었다.



코스 기간 동안에는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든 전자기기 사용이 일절 금지된다. 무언가를 읽거나 쓰는 행위도 하지 않아야 하며, 철저한 남녀 분리가 이뤄지고 참가자들 간 대화조차 금지된다.



하루 일과라고는 밥 먹는 것과 잠자는 것뿐, 휴식 시간 이외에는 명상밖에 하지 않는다. 처음에는 시간이 너무 안 가서 미칠 노릇이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아침에 출근을 한 뒤 정신없이 일을 하고 퇴근 후 집에 와서 저녁을 해 먹고 나면 금방 잘 시간이 됐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1시간이 하루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포기하고 집에 갈까?


코스의 1일 차~3일 차에는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호흡만을 관찰하는 '아나빠나' 명상법을 배운다. 그리고 4일 차~9일 차에는 온몸의 감각을 관찰하는 '위빳사나' 명상법을 배우며, 10일 차에는 '멧따 바와나', 일명 '자비 명상법'을 배우게 된다.



이 코스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중도 하차하는 시기가 2일째와 6일째라고 한다. 내게도 그 두 순간이 가장 고비의 순간이었다. 2일째에는 집중이 잘 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명상이라고는 기껏해야 5분에서 10분 정도 남짓해도 몸에 좀이 쑤셔 그 이상을 해본 적이 없었던 나에게 30분이 넘는 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숨만 관찰하는 것은 견딜 수 없이 지루한 일이었다.



마음 잡고 해보려고 해도 끊임없이 떠오르는 잡념들 때문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것은 이내 집중을 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지고(신기한 것이 그게 뭐라고 열심히 하게 된다. 그래야 할 것만 같았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아온 탓일까) 자책을 하느라 또 명상에 집중이 되지 않는 악순환에 빠졌다.



두 번째 고비는 본격적으로 '위빳사나' 명상을 배울 때였다. 처음 위빳사나를 배울 때 약 2시간 동안 허리를 똑바로 편 채로 앉아 자세를 고치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다. 코스의 첫 고비인 2일째를 넘기면서 어느 정도 앉아 있는 것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그냥 앉아 있는 것과 고정된 자세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이었다. 극심한 고통이 이어졌다. 다리가 저리다 못해 타들어 가는 것 같이 아팠다. 온몸에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 2시간의 가르침 동안 '거의' 움직이지 않았던 나는 진이 다 빠져서 휴식 시간에 밖에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10일의 코스가 남긴 것



코스를 마친다고 해서 득도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마치 군대를 갓 전역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배운 점이 있다면, 살면서 겪는 문제들의 대부분은 원인이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출근길 지하철에서 나에게 부딪히는 옆 사람에게 짜증을 내고, 나의 보고서에 대해 쓴소리를 하는 직장 상사에게 분노를 느낀다. 퇴근 후에 친구나 연인에게 그날의 억울함에 대해 호소하지만 상대가 공감해 주지 않으면 서운함을 느낀다.



우리의 불행의 원인은 모두 외부에 있다고 믿고 산다. 그러나 알고 보면 고통의 원인은 대부분 내 안에 있었다. 내 안에 존재하는 옳고 그름의 기준에 강한 믿음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외부의 대상은 그저 내 안의 불행 경보 버튼을 누르는 도화선일 뿐. 눌려질 버튼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불행도 없다.



따라서 명상은 출가 수행자만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사는 우리에게 더욱 유용한 도구다. 그것은 곧 삶의 기술(Art of Life)이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CEO와 기업인들이 명상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 을 쓴 작가이자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도 젊었을 적, 내가 다녀온 명상 코스와 동일한 방식으로 운영되는 해외의 한 코스에서 명상을 배운 뒤 지금까지도 매일 아침저녁으로 1시간씩 명상을 한다고 한다. 그럼 나 유발 하라리와 명상 동문인 건가?



장기화된 코로나와 백신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 등으로 모두가 마음 건강을 잃기 쉬운 요즘이다.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삶의 기술인 명상을 한 번쯤 배워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코스를 마치고 명상 홀 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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