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598

by 갠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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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왜 나를 만나요? 내가 싫다고 했잖아요.

B: 그건 당신이 싫은 거지, 내가 싫은 건 아니잖아요.

A: 좋아하는 사람이 싫다는 데, 왜 자꾸 만나려고 해요? 좋아한다면 그 사람이 싫어하는 건 하지 말아아죠.

B: 내가 좋아하는 걸 계속 표현하면, 그게 축적되서 어느 순간 둑 터지듯 나를 좋아하게 될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에요.

A: 어떻게 그렇게 단정하죠? 무슨 배짱이에요? 너무 막무가내 잖아요. 그래서 내가 싫어한다는 걸 몰라요?

B: 알아요. 하지만, 그건 아직 좋아한다는 게 덜 축적되서 그런 거라구요. 조금 더 기다려봐요.

A: 과연 그럴까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싫어하는 감정이 더 커져가고 있는데? 내가 싫어한다는 건 당신에게 축적되지 않나보죠?

B: 아! 그러고보니 나에게도 뭔가 쌓이는 게 있긴 하네요. 그럼 이렇게 하면 어때요? 누가 먼저 쌓인 감정을 못 견디고 둑이 터질지 보는 거에요. 어느 쪽이든 둑이 터지면 그걸 따르는 걸로 하고요. 당신을 싫어하는 감정이 먼저 터지면 내가 당신을 그만 만나려 할 거고, 당신이 나를 좋아하는 감정이 먼저 터지면 당신은 나를 계속 만나려 할테니까. 그러니까 이제부터 계속 만나요. 어느 쪽이든 감정이 둑 터질때까지.

A: 아, 정말 말 안통하네. 아니, 그러니까, 나는 그게 싫다고요. 나는 이미 싫은 감정이 둑 터지기 직전이니까 그만 만나요.

B: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그냥 한번 해봅시다. 궁금하네요. 우리의 끝이 어떻게 될지.

A: 누가 우리에요? 나원참. 자꾸 이러면 내 입에서 어떤 소리가 나올 지 모르니까, 이제 그만해요. 나를 나쁜 사람 만들려고 하지 말라고요.

B: 나쁜 사람이어도 좋아요.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서 이러는 게 아니니까.

A: 어머. 미쳤나봐. 저기요? 병원에 가보셔야 겠어요.

우연찮게 듣게 된 옆자리의 대화. 이 정도에서 나는 일어났다. 아마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지고 다시 뒤집어지기를 몇차례 반복하는 동안 이 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이 어떻게 되었을 지는 짐작이 되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끈질김 덕에 인류가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끈질김을 유도하는 상대의 끈질김에도 감탄하였고.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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