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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원

11

by che che

23.04


"야~! 자꾸 이럴 겨?"


혜영은 말이 없고, 카페 안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처음엔 사정을 하던 금희가 언젠가부터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몇 달 사이에 금희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우리 재혁이 장가보낸다고 몇 번을 말혔냐? 니가 준다고 헌 지가 은제여? 은제여~! 니가 그랬잖여! 육 개월 전에만 말하면, 은제든지 돌려준다고 했잖여! 계약서 가져와?"


금희가 테이블을 '탕 탕' 소리가 나게 두르렸다. 테이블 위의 핸드폰이 들썩였다.


"주댕이가 있으믄, 말을 혀~! 니 주댕이는 처먹을 때만 열리는 겨?"

"야! 조금희, 주댕이 조심혀."


멀찍이 앉은 검정 페도라 사내가 고함을 쳤다.


"니나 말조심혀, 용팔이 니는, 우아래도 없는 겨? 근본 없는 티 내는 겨? 니가 울 아덜 아파트 사줄 겨!"

"야!"


용필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정마담이 소리쳤다.


"용필아!"


페도라 사내가 다시 자리에 앉았다.


"금희야. 짱구 오빠한테 땅 넘기기로 했어..., 늦어도 다음 달 중순엔 입금할 게. 잔금 5월 말에 치른다고 했지? 다음 중순까지 안되면 꽁지돈이라도 당겨서 줄게. 믿어도 돼. 그리고 이제 주변에 내가 돈 떼먹었다고 떠벌리는 것도 제발 그만해. 너한테도 좋을 것 없어."


붉그락푸르락하던 금희의 표정이 부드럽게 변했다.


"떠벌리긴 누가 떠벌렸다는 겨... 진짜, 짱구 오빠한테 넘기기로 한 겨? 참이여?"

"그래, 재혁이 아파트 잔금은 문제없을 거야. 믿어도 돼."


밝은 표정의 금희가 말없이 카페를 나섰다. 혜영과 금희는 동갑내기로, 어린 시절부터 소꿉동무였다. 고등학교까지 단짝이었는데, 혜영이 서울로 떠난 후, 한동안 연락이 끊어졌었지만, 혜영이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반겨준 친구이기도 했다. 혜영이 돈놀이를 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혜영을 믿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쌈짓돈 삼천만 원을 맡긴 것도 금희였고, 따박 따박 월 이자를 받는다고 여기저기에 소문을 낸 것도 금희였다. 혜영도 그런 금숙에게 남들보다 높은 월 1.2퍼센트의 이율로 배당을 해주었다. 3년 전에 금희는 장구가 얻어준 아파트를 매도하고, 가게에 딸린 창고를 정리해 살림집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빌린 돈과 아파트 매매금을 추가로 혜정에게 투자했다. 당시에 장구가 간척지 주변의 땅을 사라고 했지만, 민기와 금희는 혜영을 택했다. 그렇게 투자한 돈이 4억이었고, 하루 종일 김밥을 말아 버는 수익보다 혜영으로부터 나오는 배당 수익이 월등히 높았다. 금희에게 혜영은 새로운 희망이었다. 그랬던 둘의 사이가 간척지 주변의 땅 문제로 완전히 틀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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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저리 방황하던 용식의 젓가락이 구운 김을 집어 입속으로 구겨 넣었다.


"얘기 들은 겨?"

"무슨?"


다시 용식의 젓가락이 날파리처럼 식탁 위를 맴돌았다.


"그만 좀 방황해, 정신사나워!"

"수동에 발바리가 출몰했다는디."

"발바리? 그게 뭐야?"

"강간범 말여~ 둘이나 당했댜. 신고가 두건이면 미신고는 훨 많다는 거 아녀..."

"수동 어디?"


양사장이 청국장과 칼국수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용식이 보글보글 끓고 있는 뚝배기에서 청국장을 한 국자 떠서 앞 접시에 덜더니, 뚝배기를 혜영 앞으로 떠밀었다.


"거까진 모르고, 니미, 징검다리로 청국장을 먹으니께, 입으로 콩이 나올 것 같어..., 니 좀 묵어."

"헐, 딴 거 먹지 왜?"

"청국장, 칼국수, 청국장... 말도 말어."


혜영이 밑반찬으로 나온 어묵 볶음을 입에 넣었다.


"양 사장이 일주일에 5일 이상 안오문 가게 뺀다 잖여... 갑질도 이런 갑질이 없는 겨... 이번 주는 오늘이 시마이여. 내 같이 협박받는 건물주도 없을 겨."

"키키, 오빤 하루하루가 완전 시트콤이야. 청국장이 맛있긴 한데, 냄새가 좀... 내가 냄새에 좀 별나잖아."


용식이 홀 서빙에 바쁜 양사장을 불렀다.


"양사장, 여 대접에 고추장 한 수저 찌끄려서 줘 봐."

"그류."


양사장이 싸늘한 표정으로 대접을 내려놓았다.


"도장 찍었슈? 잊지 말고 찍고 가유."

"가지 말고 쪼매 기둘려봐."


용식이 공깃밥을 대접에 덜고 밑반찬 그릇에 담긴 찬을 대접에 쓸어 담았다. 마지막으로 구운 김을 부셔 넣고 밥을 비볐다.


"여 반찬 한 벌 새로 깔아줘."

"그류."

"니도 조심혀. 여도, 동네가 예전 같지 않어. 술도 좀 적당히 마시고. 니가 술 처먹고 뭔 일 당할까 봐, 나가 다 겁이 나는 겨. 빈 말 아녀. 니는 내 동생이나 마찬가지여. 알자네~"

"아니, 뭔 오빠가 동생한테 그렇게 지분거려? 아니, 그렇게 걱정되면 현관에 CCTV를 달아 달라고."

"장난인 거 모르는 겨? 모르는 겨? 글고, CCTV는 말여, 집주인이 다는 거여."

"헐, 동생은 무슨..., 화장실 갈 때 나올 때가 다르다고 하더니..., 강남 살 때 내 별명이 '스턴걸'이야, '스턴걸'!"

"야! 술 취하문 그게 뭔 소용이여! 느그 자기는 집이 멀어서 도와주지도 못하는 겨."


양사장이 어묵, 고춧잎 무침, 무생채, 볶은 멸치를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뭔 소리야?"

"뭔 소리긴, 니가 술 처먹고 지낀 소리지. 글고, 땅 넘긴 다문서? 혜영아, 사람이 일이란 게 그런 겨. 돈이 없을라문 100원 한 푼이 없는 겨. 나도 말여, 3년 전인가? 아니지. 4년 전인가..., 여튼, 너그 자기한테 200 빌렸잖어. 넘들이 이 핑계 저 핑계 대문서 슬슬 빼는디, 니는 연락이 안 되지... 포크레인 그 자식은 당장 돈 안주문 일 안 한다지... 근디, 짜슥이 두 말 않고 통장에 꽂아준 겨... 나가 그때부터 동생 삼은 거 아녀."

"그랬어? 태영씨가 빌려줬어?"

"저기, 혜영아. 오손도손 잘 사는 사람한테 자꾸 그러지 마러. 너 그라문 안 되는 겨~!"

"오빠, 얘기가 왜 글로 가...! 그리고, 알잖아. 내 팔자가 그렇고, 태영씨 팔자가 그런 거야."


혜영이 알쏭달쏭한 얘길 했다.


"여튼말여, 돈이 없을라문 그런 거니께, 너무 맘 쓰지 말어. 글고, 세 배 장사면 나름 대박인 겨."

"뭐, 그것도 내 팔자야. 무리하면 탈 나니까... 우리 이모가 진짜 용한 무당이었거든. 이모가 나한테 항상 얘기한 게 그거였어. '혜영아, 한 숟갈 더 먹고 싶을 때, 숟가락 내려놔라. 그것만 지키면 평생 돈 걱정은 안 할 팔자'라고."

"역시, 그릇이 크다니께. 대장부여."


용식이 밑반찬을 때려 넣어 만든 비밤밥을 크게 한 술 떠, 입에 넣었다.


"근데, 금희는 나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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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놈~!"


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다가가 부뚜막에서 졸고 있는 녀석을 붙잡았다. 느긋하게 실눈을 살짝 뜨고 흘긋 보는 걸로 봐선, 태영이가 접근하는걸 눈치채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앙큼한 고양이 같으니.


"똘아, 아저씨랑 쌀보리 하고 놀까?"

"냐냐냐"


평상에서 마늘을 까던 아주머니가 말한다.


"똘이는 김 선생이 때마다 놀아줘서 참 좋겠다."

"똘아, 아저씨가 놀아주니까 좋지?"

"냐냐냐"

"응, 뭐라고? 좋아서 환장하겠다고?"

"하여간, 싱겁기는..."


평상에 책상다리로 앉고, 똘이의 머리가 왼쪽 허벅지에 , 오른쪽 허벅지에 뒷다리가 오도록 해서 하늘을 보게끔 눕힌다. 왼손으로 똘이 왼쪽 어깻죽지를 살짝 잡는다. 그래야 똘이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준비됐지?"

"냐냐냐"


주먹을 쥐고, 털이 가장 부드러운 똘의 목과 가슴께로 천천히 들이민다. 아주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똘이의 어깨를 통해 긴장이 전해진다. 귀가 쫑긋 서고 콧구멍을 벌름거린다.


"보리~"


주먹으로 목과 가슴 사이를 터치하고 천천히 뗐다. 녀석의 어깨에서 팽팽했던 긴장이 풀린다. 근육이 느슨해졌음이 느껴진다. 바로 이 순간이다. 전광석화와 같이 주먹을 움직였다.


"쌀!"


녀석이 서둘러 양 앞 발을 모아 보지만, 이미 주먹은 부드러운 솜털을 터치하고 빠져나왔다.


"하하하, 다시 한다."


녀석의 주둥이가 실쭉하게 모였고, 눈동자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어깨에서 근육의 약한 떨림이 전해진다. 주먹을 더욱 천천히 움직였다.


"보리~"

부드러운 털을 터치하고, 천천히 주먹을 빼냈다. 여전히 녀석의 어깨에서 긴장이 전해진다.

"보리~이~"

"보리~, 쌀!"


순간적으로 긴장이 풀리는 틈을 타, 주먹을 찔러 넣어 터치에 성공했다. 똘이의 콧구멍이 벌름거렸고, 호흡이 거칠어졌다.


"냐냐냐"

"하하하, 한 번 더 하자고? 안돼, 아저씨 그만 갈 거야."

"냐냐냐냐냐"

"제발 부탁이라고? 알았어."


이럴 때는 한번 잡혀줘야 한다. 천천히 주먹을 움직였다. 똘이는 숨 쉬는 것도 잊고, 모든 감각을 주먹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다. 물아일체. 똘이가 주먹이고, 주먹이 똘이다. 이 순간 똘이는 고양이가 아니다. 우주다.


"보리~이"

"보리~이~이"

"보리~, 쌀!"

주먹의 속도를 줄여 녀석의 젤리 장갑에 아슬아슬하게 잡혀줬다.

"아이고! 잡혔네."

"잡았댜!"


'잡았댜?' 두 발로 주먹을 단단히 잡은 똘이 흥분해서 주먹을 살짝 물었다. 분명, '잡았댜'라고 한 거 같은데?

윤 씨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 같다. 이 자식 진짜 수상한데...


"냐냐냐"

"좋냐? 이 인절미 같은 자식. 그만 들러붙고, 이제 좀 놔."


윤 씨가 샘이 나는지, 한마디 한다.


"아이고, 진짜 놀고들 있네... 김 선생, 똘이 새끼 낳으면 한 마리 데려다 키워요."

"에이~, 키우는 건 싫어요. 제 앞가림도 못하는데요..."


태영이 똘이를 안아, 다시 부뚜막에 올려놓았다.


"똘, 아저씨 간다. 얀마, 너 정체가 뭐야?"

"냐?"


똘이가 딴청을 부리며 시치미를 뗀다.


"사모님, 저 가볼게요."

"그래요."


바람에서 열기가 느껴진다. 여름이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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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카페문을 '쾅 쾅' 두드린다. 뒷정리를 하던 방울이 문을 두드리던 사람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정표 씨, 영업 끝났어요."


정표가 여전히 쾅 쾅 두드리며, 혀 꼬부라진 소리로 소리쳤다.


"야! 왜 나는 정표씨여! 넘들한텐 오빠 오빠 잘만 하드만... 니도 내가 우스운 겨? 니도 맛 좀 볼 겨?"

"정표씨, 술 먹었으면, 집에 가세요. 영업 끝났어요."


어느새 다가온 혜영이 방울을 말리며 문을 열었다.


"동생 왔어? 술 많이 취했네. 방울아, 먼저 퇴근해. 정리는 언니가 할게."

"응, 알았어. 그럼, 나 먼저 갈게."


소파에 기대앉은 정표가 테이블을 내려쳤고, 카운터에 앉아있던 용필이 혜영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혜영이 고개를 저었다.


"누님, 그라문 안 되는 거유~! 지가 시키는 대로 다 했잖여~. 풋~!"

"동생, 오늘 너무 취했어. 내일 술 깨고 얘기해."

"나가 누님이 하라는 대로 안 한 게 뭐유? 다 했잖여~!"

"알아. 내가 그래서 동생한테 고마워."

"필요없슈~. 나가 다 봤슈! 나가 다 봤던 말여! 풋~!"

"그래, 그래. 뭘 봤는지 내일 얘기하자. 오늘은 너무 늦었고, 내가 좀 피곤해."


가뜩이나 컨디션도 안 좋은데 홍 씨까지 진상을 부리니, 혜영의 표정에 짜증이 묻어났다. 무엇보다 홍 씨의 독특한 체취가 참기 어려웠다.


"그 개자슥 가만히 안 둘 겨~! 칵! 죽여불 겨~! 장난 같쥬? 큭큭. 두고 봐요, 장난인지 아닌지... 풋~"

"동생, 한숨 자고, 죽여도 낼 죽여. 알았지? 용필아."

"누님도 각오해야 할 겨. 장난 아녀."


멀찍이 앉아있던 검정 페도라의 사내가 다가와선 정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인나. 두 번 말 안 해."

" X이나 까잡숴~ 나 오늘 안 갈 껴. 누나랑 있을 겨."


용필이 어이가 없는 듯, 히죽 웃더니 정표의 어깨를 그러쥐었다. 정표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아~악! 어, 어깨~! 어깨~! 놔! 갈게~"


용필이 정표의 멱살을 잡고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인났음 꺼져."

"인마, 풋~! 그래도 나가 형인디, 이럴 수 있는 겨!"


정표가 씩씩거리며 용필에게 삿대질을 했다.


"두 번 말 안혀. 손가락 뿌라지고 싶은 겨?"

"야, 니가 깡패여! 한 번 해볼 텨!"

"응, 깡패야."


용필이 손가락질하는 정표의 오른손 검지를 잡고는 조금도 주저 없이 구부러뜨렸다. '뚜둑~!' 용필을 가리키던 정표의 검지 손가락이 하늘을 가리켰다.


"악! 악! 으~악!"

"두 번 말 안 하는 거 알잖아. 어떻게 빙신 만들어 줘?"

"아~ 아녀, 갈 겨! 갈 겨!"


용필이 손가락을 놓아주자, 슬 슬 뒷걸음치던 정표가 '쿵' 소리가 나게 문에 부닥치고는 비틀거리며 난간을 잡고 내려갔다.


"다 직이 뿔 겨..."


현리의 우편을 담당하는 정표는 혜영이 운영하는 'J'의 단골이자, 그녀의 정보원이었다. 혜영이 타깃을 정해주면 정표는 타깃이 된 사람들의 개인 정보가 담긴 우편물들을 빼돌려 혜영에게 전달했다. 혜영의 정보원들은 정표 말고도 은행, 파출소, 병원등 이런저런 분야에서 활동했다. 태영의 경우는 부부 앞으로 발송된 아파트 재산세 납부 우편과 주식 배당금 우편을 정표가 몰래 빼돌려 정마담에게 전달했고, 혜영은 적지 않은 용돈을 지급했는데, 언젠가부터 정표는 돈이 아니라, 혜영을 가지고 싶었다. 혜영이 그어놓은 선을 넘으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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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말씀을 전합니다.

'브런치'에서의 연재를 중단하고, 앞으로는 네이버 '베스트 리그'에서 연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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