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에게 배우는 자유와 통일의 정신
3·1 운동의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인 만해 한용운의 삶이 궁금하였다. 그 이유는 어떤 책에서 한용운 선생님이 쓰신 시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 시는 ‘남아’라는 시이다.
남아
한용운
사나이 되얏으니
무엇을 하야볼까
밭을 팔고 책을 살까
책을 덮고 칼을 갈까
아마도 칼 차고 글 쓰는 것이
대장부인가 하노라
무와 문의 조화를 강조하는 시로써, 대한민국 장교로 복무 중인 나에게 매우 큰 감명을 주었다. 이 시를 통해 나는 문득 만해 한용운이라는 사람의 생애가 궁금해졌다. 어떠한 삶을 살았기에 위와 같은 시를 지었던 것일까?
‘남아’라는 시는 그 당시 한용운 선생이 조선의 청년들에게 가진 기대를 표현한 시 중 하나라고 생각된다. 한용운 선생은 청년들에게 분투하고 전진하여 현실을 뚫고 나가야 함을 항상 역설하였다. 한용운 선생은 일제강점기라는 주어진 현실이 비참하지만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기회가 청년들에게 있다고 보았다. 『조선일보』 1929년 1월 1일에 기고한 글, 「조선청년에게」서도 그의 주장을 찾을 수 있다.
「조선청년에게」
현금의 조선청년은 시대적 행운아다. 바꾸어 말하자면, 현대는 조선청년에게 행운을 주는 득의의 시대이다. 조선청년의 주위는 역경인 까닭이다. 역경을 깨치고 아름다운 낙원을 자기의 손으로 건설할만한 기운에 제회 하였다는 말이다.
그 당시 조선의 청년들은 행운아라는 입장에서 청년들의 분투를 주장하였다. 문득, 현재 대한민국 청년인 나에게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주장이었다. 그때는 조국의 독립이었다면, 지금은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지금의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한용운 선생은 우리에게 ‘님의 침묵’이라는 시로 더욱 유명하다. 조국 잃은 슬픔을 문학으로 담아내어 당시의 독립지사와 지식인, 종교인 등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이뿐 아니라 독립에 대한 자신의 뜻을 운명하시기 전까지 꿋꿋하게 지켰던 전형적인 애국지사였다.
한용운 선생은 자유와 평화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한용운 선생은 자유가 인간과 만물의 생명임을 갈파하고, 자유가 유지되는 것이 평화임을 지적하였다. 그는 자유, 평화 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싸우는 것이 인간의 권리이며, 의무라고 갈파하였다.
한용운 선생은 불교 개혁, 불교 대중화, 민립대학설립운동 등에 관여하면서 대중들에게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독립정신이라 함은 일제에 저항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각 분야에서 주체적으로 일하고,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자신의 행복과 자존을 찾는 것이다. 이것이 한용운 선생이 강조한 독립정신의 핵심이었다.
한용운 선생은 독립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함께, 겨레가 해방되는 그날을 기다리면서 인내를 주장하였다. 그가 주장하는 인내는 성공을 의미한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인내는 필수다. 칠전팔기, 백절불굴의 표현처럼 인내는 쓰라린 성공을 예약한다. 그러나 인내와 비굴은 다르다. 비굴은 굴종이다. 한용운 선생은 인내와 굴종은 다르다고 단언한다. 『불교』 신 14집에 기고한 「인내」에는 그의 인내관이 잘 나온다.
「인내」
인내라는 것은 참지 아니하려면 참지 아니할 수가 있는 것을 목적을 하기 위하여 능히 참는 것이오, 굴종이라는 것은 아니 참을 수가 없어서 그대로 견디는 것인데 그것은 참는 것이 곧 목적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인내는 목적을 위하여 능동적이오 굴종은 굴종을 위하는 피동적이다.
결국 한용운 선생이 그 당시의 수많은 친일로 변절된 사람들과는 다르게 꿋꿋하게 자신의 뜻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가진 자유와 평화에 기초한 독립정신과 그의 인내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어떠한 육체적·정신적 고통도 인내하며, 그날을 기다렸던 것이다.
이를 통해 나는 한용운 선생의 독립정신을 뒤이은, 현재의 정서에 알맞은 단단한 통일정신이라는 신념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생각하였다. 그 어떤 고난과 시련이 닥쳐도 꿋꿋하게 지킬 수 있는 통일에 대한 신념을 만들어야 한다. 언젠가 반드시 다가올 통일이라는 과업을 끝까지 인내하여 이룩해서,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와 평화의 가치를 찾아 주겠다는 신념을 갖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글을 마치면서, 만해 한용운 선생의 삶이 어떠한 상징을 가지고 있는지 서술하고 있는 조종현의 「만해 한용운」에 게재된 ‘서시’를 통해서 뜨거운 눈물과 함께 새긴 나의 다짐으로 글을 마치겠다.
서시
조종현
만해는 중이냐
중이 아니다.
만해는 시인이냐
시인도 아니다.
만해는 한국사람이다. 뚜렷한 배달민족이다. 독립지사다. 항일투사다.
강철같은 의지로, 불덩이 같은 정열로, 대쪽같은 절조로, 고고한 자세로,
서릿발 같은 기상으로, 최후의 일각까지 몸뚱이로 부딪혔다.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굳세게 결투했다.
꿋꿋하게 걸어갈 때 성역을 밟기도 했다.
벅찬 숨을 터트릴 때 문학의 향훈을 뿜기도 했다.
보리수의 그늘에서 바라보면 중으로도 선사로도 보였다.
예술의 산허리에서 돌아보면 시인으로도 나타나고 소설가로도 등장했다.
만해는 어디까지나 끝까지 독립지사였다. 항일투사였다.
만해의 진면목은 생사를 뛰어 넘은 사람이다. 뜨거운 배달의 얼이다.
만해는 중이다. 그러나 중이 되려고 중이 된 건 아니다.
항일투쟁하기 위해서다.
만해는 시인이다. 하지만 시인이 부러워 시인이 된 건 아니다.
님을 뜨겁게 절규했기 때문이다.
만해는 웅변가다. 그저 말을 뽐낸 건 아니고, 심장에서 끊어 오르는 것을 피로 배앝았을 뿐이다.
어쩌면 그럴까? 그렇게 될까? 한점 뜨거운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도사렸기 때문이다.
나는 조종현이 한용운 선생을 표현한 ‘서시’를 읽으며 참을 수 없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한용운 선생은 그저 님을 사랑한 독립지사이고, 그날을 기다린 한국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를 위한 행동들이 그를 시인으로, 중으로, 웅변가로 만들었다고 생각되었다.
나 또한 한용운 선생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와 같은 한국사람이고 싶다. 그를 닮을 수 있는 길은 한용운 선생을 비롯한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원했던 독립되고 하나 된 국가, 남과 북을 불문하고 자유롭고 평화로운 국가를 꿈꾸는 것이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밟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를 꿈 꾸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애국이며, 언젠가는 만해 한용운 선생과 같은 한국사람이 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다 보면 한용운 선생이 바랐던 그날처럼, 우리의 그날도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