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스 커밍스와 함께 전쟁을 다시 읽다.

군사(유격전)·정치·안보 구조 속에서 재해석한 한국전쟁의 진짜 얼굴

by 독불장군

한국전쟁을 색다른 관점으로 쳐다본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전쟁을 보았다. 이 책을 통해서 나는 군사적인 부분과 정치적인 부분으로 생각을 깊게 할 수 있었다. 군사적인 부분에서는 한국전쟁 전후로 남한에서 발생하였던 수많은 유격전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정치적인 부분에서는 소련의 한국전쟁 의도, 브루스 커밍스가 생가하는 한국전쟁이 미국의 안보에 준 영향에 대해서 생각하였다. 지금부터 나는 위 두 가지 부분에 대해서 내가 생각했던 것을 더욱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책에서는 군사적인 부분, 특히 유격전에 대한 특징을 간단히 설명한다. 한국전쟁 전후로 남한에서는 빨치산에 의한 많은 유격전이 진행되어 왔다. 이러한 유격전은 겨울이 오면 형세가 급격하게 진압군에 유리해졌다. 겨울이 오면 유격대는 한 곳에 머물 수밖에 없고 진압부대는 기동성을 띠기 때문이다. 유격대는 요새화한 동절기 은신처에 숨었지만, 진압부대는 이를 찾아 불태웠다. “모든 것이 얼어붙기 때문에” 은신처를 재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혹한의 날씨 탓에 유격대는 빽빽이 우거진 초목의 보호를 받지 못하여 들키지 않고는 이동할 수 없었으며, 군사적 포위와 봉쇄로 기지가 고립되고 식량과 무기의 공급이 방해를 받았다. 큰 규모의 군대가 산악 지대와 저지대의 벌판과 촌락 사이를 차단하면, 소규모의 수색 섬멸 부대들이 산악 지대로 침투하여 보통 눈에 난 발자국을 쫒아서 유격대를 사냥했다. 즉 겨울에는 유격대의 정착이 불가피하였고, 이에 따라 민간인과의 유착관계는 더욱 크게 발생한다.

유격대와 민간인의 유착관계의 발달은 진압대에 의한 많은 민간인 희생을 초래하게 되었다. 또한 유격대는 정규군의 군복을 입지 않고, 민간인복장을 입고 활동하였다. 이는 진압대에 큰 딜레마를 안겨준다. 민간인 속에 들어간 유격대에 의해 진압대는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결국 한국전쟁 전의 유격전에서 남한과 미군정은 어쩔 수 없이 민간인 희생을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였고, 이는 곧 제주 4·3 사건, 노근리 사건 등 민간인 학살사건의 발생 원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래에 가능성이 있는 통일 이후 북한지역 북괴군에 의한 유격전을 과거의 민간인 학살사건을 되풀이하지 않고 수행하기 위해서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한 방법은 ‘구체적이고 뚜렷한 처벌 대상의 선정’이다. 유격대가 아무리 민간인과 동화를 시도하려고 해도, 민간인은 해당지역 거주자이기 때문에 일과생활을 통제하고 감시가 가능하다. 이러한 전제를 통해 해당지역 거주자인 민간인들에게 의심의 여지를 주는 수상한 행동의 뚜렷한 기준을 세워서 처벌을 하겠다는 공지를 해야 한다. 이를 통해 민간인에게 경각심을 주고 쉽게 유격대를 돕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또한 유격대는 위와 같은 뚜렷한 기준으로 인해 쉽게 민간인의 생활패턴에 동화를 시도하지 못할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은 어떻게 통일이 되는지, 통일 이후 국면이 어떻게 흐르는지에 따라 처벌 대상의 변화 가능성이 있어서 사전 구체적인 개념 적립의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하여 철저하게 준비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이 책은 정치적 부분에서 소련의 한국전쟁을 통한 의도 그리고 브루스 커밍스가 생각하는 한국전쟁이 미국에 주는 의의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먼저 소련의 한국전쟁을 통한 의도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책에서는 당시 미 국무장관인 애치슨이 한국을 미국의 극동방어선에서 제외한 이유에 대해 설명한다. 애치슨은 이승만이 미국의 보호를 받기 때문에 겁 없이 전쟁을 시작할까 두려웠다. 이에 애치슨은 “미국의 한국 방어 약속을 비밀로 하기를 원했다”라고 했다. 즉 한국이 공격을 받는다면 미국이 그 문제를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할 것임을 암시한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을 스탈린은 킴 필비와 여타 간첩들 덕분에 아침을 먹으면서 읽은 보고서를 통해서 알았기에, 대중에 공개할 목적으로 한 애치슨의 연설에 주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탈린은 왜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승인하였을까? 나는 그 이유를 유렵에서 미국의 이목을 동북아로 옮기려는 소련의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스탈린은 이미 북한이 남침을 실시할 시 미국이 참전하여 한반도 공산화를 막을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전쟁을 유도하여 미국의 전력을 소모하며, 유렵에서 동북아로 이목을 돌린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먼저 스탈린이 간첩을 통해 얻은 애치슨의 비밀을 들 수 있다. 다음은 북한의 남침 이후에 미국이 빠르게 소집한 UN 상임이사회에 소련의 대표가 불참하였던 것을 들 수 있다. 북한의 남침 이후 미국은 남한의 공산화를 막기 위해 UN 파병을 안건으로 하는 UN 상임이사회 대표를 통한 회의를 열었다. 당시 소련은 중국과 대만의 UN 회원국 인정 문제로 UN 상임이사회 보이콧을 한 상황이었다. 결국 이때 소련의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UN의 안건은 상임이사회 대표들의 만장일치를 통해서 이뤄질 수 있는데, 당시 소련의 대표가 참석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UN군의 파병이 결정되었던 것이다. 만약 소련이 진심으로 UN 파병을 원하지 않았다면, 충분히 회의에 참석하여 UN군의 파병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브루스 커밍스가 본 한국전쟁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책에서는 한국전쟁을 20세기의 가장 파괴적이고 주요한 전쟁 중 하나로 이해될 것으로 보고 있다. 300만 명이나 되는 한국인이 사망했고, 그중 최소한 절반은 민간인이었다.(태평양전쟁에서 사망한 일본인이 230만 명이었다.) 이 전쟁은 일본의 해안에서 가까운 곳에서 사납게 일었기에 그 나라의 부흥과 산업화를 강력히 촉진했으며, 어떤 이들은 이를 “일본의 마셜플랜”이라고 비유했다. 전쟁 이후 두 한국은 서로 마주한 채 경제개발에서 경쟁했고, 그 덕에 두 나라는 현대 산업국가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1950년 후반 여섯 달 동안 방위비가 거의 네 배로 증가하면서 미국의 광범위한 해외 기지를 구축하고 국내에서 안보국가를 수립한 것도, 그리고 미국을 세계의 경찰국가로 만든 것도 제2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바로 한국전쟁이다. 즉 브루스 커밍스는 지금의 미국이 국방에 큰 비중을 두게 된 계기를 한국전쟁으로 보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한국전쟁이 그저 자유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한 싸움 혹은 상처만 남은 잊혀진 전쟁이라는 견해를 갖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브루스 커밍스는 이성적이고 현실적이었다. 한국전쟁이 자국에 주는 의의를 냉철하고 날카롭게 분석하였던 것이다. 나는 우리도 브루스 커밍스처럼 우리가 현대에 직접 겪은 전쟁이 주는 의의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밝혀내는 노력을 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를 통해 우리 국민들에게 참전 용사들의 헌신을 마음 깊숙이 심어 줄 수 있도록 노력하여, 국민 모두가 우리나라 안보에 큰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군인은 친구든 적이든 약자와 무장하지 않은 자를 보호할 의무가 있다. 이것이 그 존재의 본질이자 이유이다. 이 신성한 책무를 어긴다면, 이는 그의 문화 전체를 모독할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다.

전투원의 전통은 유서 깊고 명예롭다. 이는 가장 고귀한 인간 본성, 즉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다.

-더글라스 맥아더-


*생각해 보기

1. 북한군에 협력하는 민간인은 잠재적 적군인가 무고한 민간인인가

(통일 시 북한지역 안정화 작전 간 행해질 북한 잔존 세력들의 저항에 대한 대응방안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2. 집단순응사고

- ‘집단순응사고’는 집단 내 조화와 일치를 바라는 마음이 비합리적 의사 결정을 초래한다는 심리적 현상이다.

3. 브래히트의 말

- 단순하게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순한 생각은 큰사람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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