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의 뜻을 오늘에 묻다.

독립운동가의 정신으로 본 한국의 미래와 나의 길

by 독불장군

만해 한용운, 단재 신채호 등 대한민국 독립운동가의 생애에 대한 책을 읽다보니,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김구 선생님이 생각났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김구’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나 또한 김구 선생을 절대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자세히 알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김구 선생님의 자서전 ‘백범일지’를 읽어 보았다.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님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생을 살아가고, 독립운동을 해 왔는지를 알고 느낄 수 있었다. 지금부터는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김구 선생님의 여러 가지 생각들과 이를 통한 나의 다짐과 생각을 말하고자 한다.

시작하기 전에, 먼저 김구 선생님의 호인 ‘백범’의 탄생에 대해서 알아보자. 김구 선생님은 처음부터 김구가 아니었다. 원래는 김창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였다. 그러나 후에 이름을 김구로 바꾼다. 이는 지속되는 독립운동을 위해 왜놈의 민적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백범’은 김구 선생님께서 감옥에서의 다년간 연구에 의해 우리나라 하등 사회, 곧 백정·범부들이라도 애국심이 지금의 자신 정도는 되어야 완전한 독립 국민이 되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지은 것이다. 즉 김구 선생은 이름부터 삶 자체가 독립운동가였던 것이다.

삶 자체가 독립운동가였던 김구 선생은 자신만의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것은 교육에 관한, 리더에 관한, 우리 민족의 숙명에 관한, 자유와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었다.

먼저 김구 선생님께서 가지고 있는 교육관이다. 김구 선생은 일생에 양산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기간이 있다. 선생은 “인재를 양성하여 장차 완전한 국가의 일원이 되도록 함으로써 약한 제 나라를 강하게 하고 어둠으로부터 광명을 되찾는 것” 바로 이것이 구국운동 때 교육의 목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해방된 조국에서 교육의 목적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인후지덕(仁厚之德)을 갖추고 홍익인간의 이상을 가진 우리 민족이 장차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최고로 발달한 문화를 건설할 자격이 있다고 확신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자격은 무력과 경제력에 좌우되는 게 아니라 바로 교육의 힘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는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서 다시 깨닫게 되었다. 교육은 백년대계(百年大計)라고 한다. 즉 교육은 미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를 통해 나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교육의 중요성을 절대 간과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다음은 김구 선생이 생각하는 리더의 재목이다. 김구 선생은 장재를 ‘태산복어 전심부망동 여사졸동감고 진퇴여호 지피지기 백전불태(泰山不顧 轉心不妄動 與士卒同甘苦 進退如虎 知彼知己 百戰不殆)’라고 설명한다. 이 뜻은 태산이 무너져도 마음이 흔들리지 말고, 병졸과 더불어 달고 쓴 것을 함께하며, 나아가고 물러감을 호랑이 같이 하며, 남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지지 않는다. 또한 선생은 ‘임사면 불의인하고. 의인이면 불임사(任事면 不疑人하고, 疑人이면 不任事)’, 즉 일을 맡겼으면 의심하지 않고, 사람을 의심하면 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뜻의 말을 신조로 삼았다.

나는 선생의 신조를 통해 어떤 시대와 조직을 불문하고 좋은 ‘리더’의 조건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팔로워와 같이하고, 초연하며,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철저하게 생각을 하는 것. 이것이 좋은 리더의 동서고금 만고불변의 법칙이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 나아가야 될 길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다음은 김구 선생이 생각하는 우리 민족의 숙명이다. 김구 선생은 우리 민족이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 그의 숙명이었다.

그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국가는 문화의 힘을 가지고 있는 국가였다. 현재 대한민국은 한류열풍으로 k-pop, 드라마, 스포츠 등 많은 분야에서 한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것이 김구 선생이 원하던 국가의 모습이지 않을까? 결국 앞으로도 우리나라는 우리의 문화가 전 세계의 뻗어나가 모범이 될 수 있도록 그 여건과 환경을 보장해 주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구 선생의 정치이념이다. 그의 정치이념은 한마디로 자유이다. 그는 자유의 나라를 원하였다. 그가 생각했던 자유로운 나라의 삶은 자유로운 국민의 의사에서 나온 국가의 규범과 국법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자유를 추구하고 독재를 배척하였다. 독재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결과적으로 문화의 힘은 꽃을 피우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여러 가지 나무가 어울려서 위대한 삼림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백 가지 꽃이 섞여 피어서 봄들의 풍성한 경치를 이룬다. 즉 자유로운 국가에서 각 개인의 사상과 학문, 생활들을 통해서 위대한 문화가 완성된다고 본 것이다. 그는 자유를 통해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뛰어난 생각이 세상에서 마음껏 날뛰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김구 선생은 교육과 자유를 통해 문화 강대국 대한민국을 꿈꿨다. 우리나라가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 것이다. 우리나라를 통해 세계가 평화롭기를 원한 것이다. 이를 통해 대한의 사람이라면 가는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기를 원하였다. 우리 민족은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김구 선생은 반드시 자신이 생각하는 국가의 모습이 실현될 것을 끝까지 믿었다.

글을 마치며, 김구 선생이 죽을 때 까지 자신이 생각하는 신념을 꿋꿋이 지킬 수 있었던 배경인, 그의 스승 고능선 선생의 말씀으로 끝을 맺겠다.


“호심인이 되려는 본의를 가진 이상 몇 번 길을 잘못 들어서 실패나 곤란을 겪었을지라도 본심만 변치 말고 ‘개지불이진지불이(改之不已 進之不已)’(잘못된 점 고치기를 그치지 않고, 나아가기를 그치지 않는다.) 하노라면 목적지에 달하는 날이 반드시 있으리니, 지금 마음에 고통을 가지는 것 보다는 힘써 행해야 할 것 아닌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요, 고민은 쾌락의 근본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상심하지 말아라.”


나는 김구 선생의 의지를 이어 대한민국이 전세계의 모범이 되는 문화 강국이 되기를 원한다. 이를 위해 한반도에서 우리 민족인 북한도 같이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통일에 기여를 하는 삶을 사는 것이 나의 꿈이다. 통일을 위한 삶을 살겠다는 마음을 가진 지금, 고능선 선생의 말을 절대 잊지 않고 나의 꿈을 위해 죽는 날 까지 나아가겠다고 다짐하며 글을 마친다.


*은감

은나라 국민은 전대 하나라가 멸망한 것을 감으로 하라는 뜻으로, 남이 실패한 것을 거울 삼아 자신의 경계로 삼으라는 뜻


*치하포 사건

백범 김구가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에서 국모의 복수를 위해 일본인을 타살한 사건이다.


*안악사건

1910년 안명근이 서간도에 무관학교를 설립하기 위한 자금을 모집하다가 황해도 신천지방에서 관련 인사 160명과 함께 검거된 사건.

이 때 일제는 무관학교 설립자금을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위한 군자금으로 날조하여 관련 인사들을 일제히 검거하였다.


*105인 사건

1911년 조선총독부가 민족해방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데라우치 총독의 암살미수사건을 조작하여 105인의 독립운동가를 감옥에 가둔 사건으로 애국계몽운동가의 비밀결사였던 시민회가 해체되는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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