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범도를 제대로 안다는 것

독립군의 길, 유격전의 길, 그리고 기억의 책임

by 독불장군

최초 내가 이 책을 고른 이유는 홍범도 장군이라는 독립운동가를 ‘잘’ 알기 위해서 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홍범도라는 사람을 알지만, 그에 대해 자세하게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그랬다. 그 이유는 홍범도 장군이 독립운동을 진행하면서 그 당시 소련 공산당의 지원을 많이 받아서 그렇다. 그도 그럴 것이 냉전시대를 거치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한 때 반공사상이 극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대한민국 독립운동 무장투쟁의 대표였던 홍범도 장군을 알아보기로 결심하였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전반적인 홍범도 장군의 무장 독립운동사를 알 수 있었다. 특히, 그가 어떻게 청산리에서 큰 승리를 이룰 수 있었는지 깊게 살펴보았다. 일반적으로 청산리 대첩은 김좌진 장군의 업적으로 인식되지만, 당시 홍범도 장군은 청산리 전투 직전과 초기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책에서는 그 당시 북로군정서 총재 서일 장군과 철기장군 이범석 장군이 분석한 청산리 대첩의 승리요인이 있다. 이 둘의 분석 내용을 토대로 정리한 내가 생각하는 홍범도 장군이 어떻게 청산리 대첩의 승리 여건을 조성했는지 그 요인은 다음과 같다. 『➀홍범도 장군과 의병들의 군인정신 ➁그들의 전투방식(유격전) ➂그들의 복장』 지금부터 위 세 가지 요인들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청산리 대첩의 가장 큰 승리 요인은 ‘군인정신’이었다고 본다. 당시 홍범도 장군과 그를 따르던 의병들은 독기가 있었다고 한다. 나라를 빼앗긴 슬픔, 가족이 고통당하는 괴로움, 억압받는 현실에 대한 아픔 등으로 그들은 이미 일제에 대한 분노가 있었다. 이는 곧 적과의 전투에서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게 한 것이다. 또한 그들의 독립을 향한 열망은 적과의 격렬한 전투를 주저하지 않게 만든 원동력이었다. 이와 같은 동력을 통해 그 당시 의병들의 정신력은 극도로 무장되어 있었고, 청산리 대첩의 가장 큰 승리 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무장된 정신력을 바탕으로 그들만의 전투를 행한다. 일제강점기 시절 우리 의병들은 한반도에서, 만주·간도에서, 러시아에서 그들의 무장투쟁을 지속한다. 그들의 전투는 대부분 유격전이었다. 대부분의 의병들은 전문적인 군사훈련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장비 또한 갖추지 못하였다. 이는 그들이 전문적인 군사훈련과 장비를 갖춘 일제와 싸워 이기기 위한 전투방식으로 유격전을 택하게 하였다. 의병들은 대부분 무장투쟁 과정에서 그들이 전투하는 지형과 주변 마을에 빠삭했다. 이는 그들이 유격전을 수행하면서 주도권을 잡을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또한 주변 마을과 공생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협조를 얻게 된다. 마치 물과 물고기의 관계가 형성된 것과 같이 말이다.

특히 유격전은 홍범도 장군의 비범함을 엿볼 수 있는 전투 방식이었다. 빨치산 대장 홍범도. 그의 무장 투쟁은 말 그대로 유격전 그 자체였다. 산포수있었던 그의 백발백중의 총포술은 그의 유격전을 뒷받침했다. 그리고 그의 유격전에 대한 남다른 이해는 청산리 대첩 중 완루구 전투에서 그 진면목이 발휘되었다. 완루구 전투는 청산리 대첩의 여러 전투 중 하나이다. 그 전반적인 내용에 대한 나의 생각은 유격전을 동반한 ‘이이제이(以夷制夷)’이었다. 홍범도 장군은 이 전투에서 일본군이 일본군을 죽이게 만들었다. 전술의 전반적인 개요는 이렇다. 적의 양측 진영을 동시에 공격한 후 퇴각하여 적들 양 진형이 서로 만나는 한 지점에서 빠져나와, 그들이 서로 싸우게 만든 것이다. 이는 기본적인 유격전의 매복 및 기습과 함께 홍범도 장군의 남다른 유격전의 이해도를 보여준 전투이다.

유격전과 더불어 홍범도 장군과 의병들이 청산리 대첩을 이룰 수 있었던 요인으로 그들의 ‘복장’이었다. 복장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망국의 비정규군인 의병들이 제국을 형성하는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정규군이었던 적들보다 전투 복장이 좋았을 일이 만무하다. 그러나 단언컨대 청산리 대첩에서, 그리고 유격전에서 만큼은 의병들의 질 낮은 복장이 승리의 요인이었다. 그들은 대개 홑옷과 짚신을 신었다. 이는 그들이 유격전을 수행함에 있어서 각종 장구류를 착용한 일본군보다 뛰어난 기동성을 선보이게 했다. 의병들은 기동성을 바탕으로, 치고 빠지는 다양한 유격전을 선보이면서 전투의 주도권을 꽉 쥐었다.

결론적으로 내가 바라본 청산리 대첩은 유격전에 뛰어난 홍범도 장군을 필두로 한 의병들이 독립에 대한 열망으로 전투에 임했던 정신력이 결합되어 만들어진 결과이다. 나는 홍범도 장군이 누구인지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 지금도 그를 100% 알고 있다고 자부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자 열렬한 독립운동가였다. 그리고 그는 군인이었다. 그는 1943년 먼 이국땅(카자흐스탄)에서 별세하였다. 그리고 지금도 공산당이라는 이유로 우리나라에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사상가도 정치인도 아닌, 그저 대한의 군인이자 독립운동가이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그를 기억하고 그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 그의 독립운동 신화를 기억하며, 그의 정신을 이어가는 군인이 되도록 노력하자.


*당시 홍범도 장군은 공산주의자라기보다 민족주의자에 가깝다. 그저 홍범도 장군이 독립운동을 위한 수단으로 공산주의 국가 소련의 후원을 받기 위하여 공산주의자로 보이는 것이다.

32436264780.20250701081243.jpg


작가의 이전글도마에게 다시 묻는 위국헌신의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