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라는 조직에서 나는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
뉴스를 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사람들은 권력을 얻으면 초심을 잃을까? 왜 많은 사람들이 순수했던 초심을 잃고, 권력을 갖게 되면 타락할까? 나는 약 7년의 군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지휘관(자), 이등병부터 병장까지의 사람들을 봐왔다. 그들은 종종 과거의 모습과 권력을 잡고 난 후의 모습이 달라지는 경우가 있었다. 사람은 변한다고는 하지만, 왜 변하는지가 궁금했다. 변한 이들은 대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책들을 둘러보다가, 이 책을 선택했다.
권력이 무엇이기에 사람을 대게 부정적으로 바꾸는지 알고 싶었다. 이를 통해 나는 그들과는 다른 모습이 되고 싶다. 군의 리더라는 장교로 복무하고 있는 나 또한 언젠가 더 높은 직위로, 더 많은 권력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앞서 경험한 그들과는 다르게 긍정적으로 변하고 싶다. 이를 위해 나는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기록하고, 마음속에 새겨두어 어떤 마음가짐을 통해 군생활을 지속해야 하고, 나아가 우리 군이 어떤 방향성으로 정진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권력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책에서는 권력의 본질을 다음을 통해 설명한다. 먼저 사회 심리학자 대커 켈트너의 쿠키실험이다. 이 실험은 대학생들을 여러 조로 나눠 토론을 시킨 뒤 접시에 쿠키를 내놓는다. 조장으로 선택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더 게걸스럽게 먹는다는, 다시 말해서 사회적으로 뻔뻔해진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는 권력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신경 쓰지 않게 만든다는 사실, 즉 다른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음은 스탈린의 정치범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의 말을 인용하여 권력을 설명한다. 스탈린의 정치범 강제 노동 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러시아 작가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은 말했다. “선과 악의 경계는 모든 사람의 마음 한복판에 있다.” 선과 정의를 내세워 다른 이들을 압박하는 자들과 이들의 지지자들은 ‘선한 권력’이 아니라, ‘악한 권력’과의 경계를 수시로 넘나드는 권력이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권력을 갖게 되면 어떻게 될까? 권력을 갖게 된 권력자는 냉정해지고, 연민이나 동정심이 사라진다. 그 이유로 우리는 종종 권력자에게 ‘강한 멘탈’을 요구하며, 소신을 바라기 때문이다. 즉, 후안무치의 자질을 권력자에게 요구하게 된다. 권력자는 비판에 의연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후안무치는 어느 정도 필요악이거나 미덕일 수 있지만, 문제는 늘 과유불급이다. 권력자가 어떤 비판이 쏟아지건 마이동풍 식으로 넘겨버리는 건 의연한 것도 아니고 ‘강한 멘탈’도 아니다. 그저 파렴치한 후안무치이다.
이뿐 아니라 권력을 갖게 되면 고독해진다.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말했다. “권력을 더 많이 갖게 될수록 누가 자기에게 거짓말을 하고 참말을 하는지 점점 알기 어려워진다. 아주 강력한 권한을 가진 사람, 독재자는 이권에 둘러싸인다. 독재자는 본인을 현실로부터 고립시킬 목적만 가진 사람들에게 둘러싸이게 된다. 그래서 그를 소외시키기 위해 모든 것이 협조를 한다.
즉, 권력자는 고독하다. 주변의 모든 것을 의심하고, 거리를 두게 된다. 주변의 많은 거짓으로부터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 보면 예민해지고, 신경질적이게 된다. 그리고 이는 곧 겸손함을 잃고, 거만과 무시, 질책 등으로 변한다.
그렇게 권력자는 본인보다 아랫사람을 막대하게 된다. 이는 권력의 또 다른 속성과 관련된다. 미국의 심리학자 수전 피스크는 주장한다. 사회적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보다 권력을 적게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한 사람의 개인이 아니라 단지 유형화된 스케치로만 바라보는 나태한 습관에 쉽게 빠져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되는 이유로 권력자의 주의력은 위계 체계의 위로 향하지, 아래로는 향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을 자기 운명을 통제하는 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는데, 이것은 그 사람이 하는 행동을 예측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즉, 권력이 많아질수록 아랫사람에 대한 공감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권력자는 상대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하는 정도가 낮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력자가 파렴치한 후안무치도, 아랫사람을 막대하지도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권력자는 지위가 높아질수록 부하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 방법은 다양하다. 그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거나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등이 있다. 특히, 적극적인 소통은 매우 중요하다. 권력자가 고독해진다는 특징은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주변은 거짓과 이권 투성이 일 것이다. 이를 구분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꾸준한 소통이다. 적극적인 소통이야 말로 주변의 참과 거짓을 확실히 구분하게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인에 대한 비판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반성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나의 잘못은 반성하고, 그저 지적에 불과한 것은 의연하고 초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까지 나는 권력의 본질과 특징이 무엇이고, 권력을 얻게 된 사람이 어떻게 변하는지, 긍정적으로 변하기 위해 어떠한 방향으로 행동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정리해 보았다. 책을 읽다 보니 권력의 특징은 우리 군 조직에도 만연해 있었다. 기본적으로 군 조직은 크게 세 가지 특징을 갖는다. 상급자의 명성권력에 의한 수직적 권력구조, 조직보위론의 분위기가 만연한 폐쇄적 조직구조 그리고 마지막으로 무조건적인 복종과 충성을 강조하는 관료주의적 조직구조이다.
먼저 군 조직의 수직구조에 대해서 알아보자. 군대는 기본적으로 계급에 의한 조직이다. 하급자는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하고, 상급자는 책임을 동반한 명령을 통해 조직을 지휘한다. 군 조직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생사가 걸린 임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빠르게 변하는 전장에서 시기적절한 판단과 행동이 필요하다. 이에 중앙집권적 수직구조가 가장 효율적이다. 이는 권력자의 독재와 같은 성격이 나타날 수 있는 구조이다. 권력자에 의한 중앙집권적인 조직은 책에서 나오는 명성권력에 취약하다.
명성권력이란 개인의 명성 혹은 직위가 주는 힘이다. 예시를 통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프랑스 작가 미셸 투르니에는 ‘외면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실 그 유명한 상(노벨상)을 받는다는 것은 필경 무시무시한 일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면을 쓰는 꼴이 되어버린다. 그 상을 받고 나면 내 말은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노벨상이 하는 말이 된다. 내가 손에 쥐고 재미있게 놀기도 하고 또 세상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이 가벼운 붓을 그만 무거운 몽둥이로 변해버릴 것이고, 나는 그걸 가지고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겁고 살인적인 무기인양 휘두르게 될 것이다. “ 즉, 어떤 한 개인의 명성으로 인해 행동에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 힘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 명성 있는 사람의 행동 하나, 말 하나가 권력이 되는 것. 그것이 명성권력이다.
군대는 이와 같은 중앙집권적, 계급적 조직구조로 인해 기본적으로 수직적 구조의 특성을 갖는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폐쇄적 조직구조를 만든다. 수직적인 구조는 각 계층별 의사소통의 단절로 이어진다. 이는 상하급자 관계가 주는 특수성으로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와 같은 군대의 폐쇄적인 특성은 군 조직에 조직보위론적 분위기를 형성한다. 조직보위론이란, 조직에 문제가 있더라도 그걸 말리거나 비판하지 않고, 은폐해 조직을 지킨다는 이론이다. 즉, 조직 내부적으로 발생한 일에 대해서 최대한 내부적으로 해결하려는 특성을 갖는다.
마지막으로 군대는 관료주의적 조직구조를 갖는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관료주의란 ‘상급자에게는 약하고 하급자에게는 힘을 내세우려 하며, 자기 업무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일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자기 책임은 지지 않으려 하면서도 독선적인 행동이나 의식을 보이는 따위의 특성’을 말한다. 이는 앞서 설명한 군 조직의 두 가지 특성에서 비롯된다. 상급자와 하급자의 뚜렷한 권력차이를 보여주는 수직적인 구조와 문제가 발생했을 때 폐쇄적으로 해결하려는 폐쇄적인 특성이 결국 군대를 관료주의적 조직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위와 같은 군 조직의 특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기본적으로 권력자로 볼 수 있는 지휘관은 항상 겸손해야 한다. 앞서 설명과 같은 군대는 명성권력에 취약하다. 지휘관의 말과 행동은 주변에 큰 영향력을 준다. 군 조직 특성상 어쩔 수 없다. 그렇기에 지휘관은 항상 신중하고, 겸손해야 한다. 본인의 영향력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이와 함께 권력자는 항상 상ㆍ하간의 의사소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군 조직의 특성은 폐쇄적인 특성을 만들고, 이는 곧 조직보위론적 분위기를 형성하여 어떠한 문제를 은폐하고 조작하려는 경향을 만들게 된다. 이와 같은 문제는 결국 수직적인 군 조직으로 인한 의사소통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의사소통의 부재는 결국 조직 내부의 문제가 외부로 알려져 조직의 이미지를 실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된다. 물론, 조직의 문제가 외부로라도 알려져서 해결된다면 긍정적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개선되어야 할 현상이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내부의 문제가 외부로 알려지면 조직의 구성원들끼리 분열이 야기된다. 하급자는 상급자를 믿지 못하고, 상급자도 하급자를 믿지 못하여 상하 간의 신뢰가 깨지게 된다. 이는 생사를 함께하는 관계의 신뢰가 깨지는 것을 의미하고, 결국 공멸의 결과를 초래한다.
이를 해결하는 방법이 앞서 언급한 상급자에 의한 적극적인 의사소통이다. 조직 구성원들 간의 소통은 조직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휘관은 의사소통과 함께 적극적으로 타협을 할 필요가 있다. 타협은 상급자의 적극적인 의사소통으로 식별된 문제를 해결하고 신뢰를 얻게 한다. 이는 결국 부대가 스스로 ‘자정작용’을 하게 된다. 그러나 군대의 수직적이고 관료주의적 성격은 상하급자 간의 타협을 부정적으로 여긴다. 그 이유는 아마도 권위주의적인 조직에서 타협은 상급자의 권위가 실추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생사가 결정되는 군대 임무의 특성상 지휘관의 권위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군 조직의 구성원들은 민주사회 시스템에서 군 시스템으로 들어온다. 토의와 토론, 다수결에 의한 시스템에 익숙한 이들에게 군대와 같은 권위주의적 조직은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들에게 타협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구성원들과의 타협은 필수적이다. 특히, 타협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책을 통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미국의 급진적 빈민 운동가이자 지역사회 조직가 솔 앨린스키는 타협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타협은 언제나 실질적인 활동 속에 존재한다. 타협은 거래를 하는 것이다. 거래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숨 고르기, 보통 승리를 의미하며, 타협은 그것을 획득하는 것이다. 당신이 무에서 출발한다면 100%를 요구하고 그 뒤에 30% 선에서 타협하라. 당신은 30%를 번 것이다. “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는 끊이지 않는 갈등 그 자체이며, 갈등은 간혈적으로 타협에 의해서만 멈추게 된다. 일단 타협이 이루어지면, 바로 그 타협은 갈등, 타협, 그리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갈등과 타협의 연속을 위한 출발점이 된다. “ 권력의 통제는 의회에서의 타협과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사이에서의 타협에 바탕을 두고 있다. 타협이 전혀 없는 사회는 전체주의 사회이다. 자유롭고 개방적인 사회를 하나의 단어로 정의해야 한다면, 그 단어는 ‘타협’ 일 것이다.
이를 통해 봤을 때 권위주의적인 군대 특성에도 불과하고 지휘관과 장병들 사이의 타협은 필요하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민주주의 사회를 지키는 군 조직은 전체주의적 성향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생존이 달린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러나 결국 군대는 국민을 위한 조직이며, 우리 군의 구성원은 민주주의 사회를 경험한 후 입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공감과 능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어느 정도 타협은 반드시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관료주의적인 군대 특성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상명하복이 되어야 한다. 상관의 명령에 대하여 정당한 명령인지에 대해 개인이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상급자의 의사소통 노력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명령을 받는 구성원이 명령의 정당한 이유를 알고 행동한다면 개인의 행동에 대한 책임의식과 함께 임무수행에 진심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상관의 명령에 따르기만 한다면 아돌프 아이히만과 같은 사람이 다시 나타날 것이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친위대 중령으로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을 학살한 실무 책임자였다. 그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이다. 그는 유대인 말살이라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것은 그의 타고난 악마적 성격 때문이 아니라 아무런 생각 없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고력의 결여’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항상 생각해야 한다. 최우선 가치를 설정하고, 임무의 도덕적 정당성을 항시 따져야 한다. 우리의 행동이 큰 영향이 될 수 있다. 물론 상관의 명령에 충성을 다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상급자의 의도에 의문이 들어도 내가 그리지 못하는 큰 그림을 그들이 그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항상 최우선 가치를 생각해야 한다. 이와 같은 노력은 결국 군의 관료주의적 특성을 타파할 것이다.
호주 정치학자 존 킨은 말했다. ”민주주의는 겸손 위에서 번영한다. 겸손은 얌전하고 순한 성격 혹은 굴종과 절대로 혼동해서는 안 되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덕이며 오만한 자존심의 해독제이다. 이는 자기 자신과 타인의 한계를 알고 인정하는 능력이다. “
겸손을 잃은 오만한 권력에 선의는 그야말로 독약이 될 수 있다. 사회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일을 할 때엔 겸손하지 않아도 되는 건 물론 오히려 큰소리로 호통을 쳐가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자기 무덤 파기’ 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중요한 일을 맡은 사람들이 아무리 옳은 일을 한다 해도 자신의 ‘인정 욕구’나 ‘도덕적 우월감’을 자제하는 겸손을 보일 때에 비로소 자신의 소신을 실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늘 다른 사람의 허물은 현미경으로 관찰하려 들면서 자신의 허물은 망원경으로도 보지 않으려는 독선과 오만이 문제라는 것이다.
아무리 옳은 말이라도, 말하는 이의 독선과 오만은 말을 죽이고야 만다. 겸손으로 무장할 때에 다른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 성실과 용기와 책임감도 같이 생겨난다. 겸손이 어렵다면 겸손한 척이라도 하자. 겸손한 척하다가 조금이나마 실제로 겸손해질 수 있는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싶다는 뜻이다. 권력자의 겸손은 결국 의사소통, 타협, 존중과 배려 등을 통해 조직을 긍정적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이것이 우리 군의 지휘관들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겸손을 바탕으로 전우들과 국민에게 강력히 신뢰를 받는 군대가 되기 위해 겸손의 덕목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부록
독일의 작가 로버트 미지크는 『좌파들의 반항』에서 말했다. ”신은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벗어난 뒤에도 무려 40여 년 동안이나 사막을 헤매게 만든다. 이는 그들의 노예적인 특성을 벗어버리고 이집트에서 밴 노예적 습성의 때를 벗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탈출한 유대인 중에서는 그 누구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 이르지 못한다. 약속된 행복은 오로지 사막에서 태어난 세대만이 누린다. 출애굽기의 역사는 서양의 문화적 기억 속에 깊이 아로새겨졌고, 이는 좌파의 정치적 문화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이야기의 핵심은 이렇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은 사람은 자신을 희생하고, 자신을 교육해야 한다. “
무섭고도 슬픈 이야기다. 왜 그런 것인가? 나는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통일에 대해 생각했다. 통일을 위해 노력하는 현세대의 사람들은 통일이 주는 혜택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다만, 우리의 후손들이 누릴 수 있다. 이는 누군가에겐 부당하고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노력한 것은 우리인데 그 주체가 이익을 누리지 못한다니 그렇게 생각할 만하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를 기억해야 한다. 근현대의 우리나라의 역사는 이 이야기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이다. 20세기 초 독립을 염원했던 독립운동가들은 그토록 바라던 독립을 위해 투쟁하였지만 독립 후의 대한민국을 누리지 못했다. 독재정권 당시 민주화 운동가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지만, 현재 이름 없는 많은 운동가가 말없이 사라졌다. 즉, 현재 우리의 삶도 그들의 희생이 바탕이 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무섭고도 슬픈 이야기가 되겠지만 우리는 이에 보답한다는 명분으로 다음 세대가 더 나은 세상을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