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γνῶθι σεαυτόν
'γνῶθι σεαυτόν'(그노시 세아우톤)은 그리스말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이다.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그 말을 처음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델포이 신전에 쓰인 신탁으로
당시 지혜를 추구하던 이들은 모두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너는 누구인가?
기독교에서는 '나 혹은 너'에 대하여 하느님의 아들, 딸로 표현한다.
동학에서의 '시천주'는 '나 혹은 너'에 대하여, 주인(천주)을 모신 존재라고 말한다.
물론 이것은 천도교의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과도 통한다.
아니,
건강한 종교는 이렇게 '너 혹은 나'를 신에게 종속된 존재로 여기지 않는다.
이 동등함은 '같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런 귀한 존재므로 '하느님처럼, 하늘처럼, 천주처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만 그런 존재가 아니라 너도 그런 존재라는 인식은 서로 섬김의 삶을 살게 한다.
너를 섬기는 것이 곧 하느님을 섬기는 일이요, 나를 존중하는 일이 곧 하늘을 섬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말의 전제조건이 '네 몸을 사랑함'에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가?
자기의 욕심만 채우려는 비뚤어진 자아를 자신이라 여기고, / 남과 비교하며 남의 판단이나 인정을 받는 데 급급하고,/ 자본의 유혹에 빠져 소비지향적인 삶을 살아가게 된다.
자신을 알지 못하는 삶의 결과는,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지고 있어도 행복하지 않으며, 행복하다고 여기는 것조차도 착각일 뿐이다.
우리는 사람이다.
우리 안에는 하늘이 들어 있으며 그래서 우린 하늘이다.
너도 나도 하늘이다.
이미 우리는 귀한 존재들이다.
그에 걸맞게 살아왔는가?
이제는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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