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동백이 피어나는 계절이다.
그리고 동시에 동백이 뚝뚝 붉은 피를 흘리듯 떨어지는 계절이다.
일 년 내내 수고하여 꽃을 피웠음에도 미련 없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에 삶을 '툭!' 놓아버린다.
그냥 놓아버리기 미안하면,
바람을 핑계 삼아, 하얀 눈을 핑계 삼아, 겨울비를 핑계 삼아, 동박새의 날갯짓을 핑계 삼아
떨어진다.
어느 계절 어느 날,
이제 막 수정을 마쳤으니 조금만 더 버텨주면 새콤달콤한 석류를 맺을 터인데 아쉬웠다.
석류나무를 바라본다.
핀 꽃들마다 열매를 맺는다면 나무가 버텨내지 못하겠구나 싶다.
떨어진 꽃들이 있어 남은 꽃들 더 실한 열매를 맺는 것이다.
그러므로,
남은 꽃들은 떨어진 꽃들에게 감사를 해야 한다.
어느 계절 어느 날,
하얀 보리수 꽃이 흰 눈처럼 쌓였다.
이토록 많은 꽃이 떨어졌어도 붉은 보리수 열매는 다닥다닥하니 이 어찌 신비가 아닐까?
떨어진 꽃, 낙화한 꽃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신비스러운 메시지는 무엇인가?
나는,
오로지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에서 일등이 아닌 이들에게 감사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듣는다.
어느 계절 어느 날,
밤새 비바람이 몰아치더니만 아침에 나가보니 모감주나무의 꽃이 하염없이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비바람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꽃,
아, 남아있는 꽃들에게도 감사를 해야 하는 것이구나!
그렇다.
낙화하는 꽃들이 있어 남은 꽃들 실한 열매를 맺으니 낙화하는 꽃들에게 감사를 해야 한다.
동시에
남은 꽃들은 낙화한 꽃들의 몫까지 피워내니 또한 남은 꽃들에게도 감사를 해야 한다.
신이 땅으로 오시고,
땅과 인간이 그를 영접하여 하늘과 땅이 하나 되고, 신과 인간이 하나 되는 신비를 매 년마다 재현하는 것이다.
성탄은 낮은 자들의 날이다.
이날 만큼은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낙오한 이들에게 감사를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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