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글을 쓴 분이 겨울나무를 보며 깨달은 것이나 내가 깨달은 것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을 문장으로 풀어내는 기교 정도라고나 할까?
그러나 때론 '한 단어' 혹은 '한 문장' 속에 들어있는 깊이로 깨달음의 깊이가 다름을 느끼게 된다.
고개를 끄덕이며 글을 잃다가, 문득 내게 말했다.
바보야, 그게 아는 게 아니야!
그렇다.
보고, 듣고, 말한다고 다 아는 게 아이다.
삶으로 살아지기 전까지는 다 아는 게 아니다.
깨달음은 찰나의 순간이다.
그러나 그 깨달음이 또 다른 깨달음을 잉태하려면 삶으로 살아져야 하는 것이다.
나무에 대한 나의 묵상의 일부는 이러했다.
겨울을 준비하기 위해서 나무는 겹겹이 껴입는 것이 아니라, 모두 벗어버린다.
그리고 몸에 축적하는 것이 아니라 몸속에 있는 물을 최소한의 것만 남기고 모두 비워버린다.
그래야 혹한의 추위에도 얼어 터지지 않는다.
비움, 텅 빈 충만의 지혜를 겨울나무에게서 본다.
이런 류의 깨달음, 그것은 비단 나에게만 홀연히 다가온 것이 아니라,
겨울나무를 바라보며 잠시라도 사색한다면 누구라도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이다.
수많은 이들이 다 안다고 생각하는 것, 그러나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
진정으로 알려면 삶으로 살아가야 하며,
삶으로 살아지지 않는 앎은 진정한 앎이 아니라는 것이 그것이다.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말들과 단어들이 넘쳐나지만, 이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은 이유는
아직 삶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나는 아침에 내게 한 마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보야, 그게 아는 게 아니야!"
우리는 안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보고 듣는 것이 전부라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우리에게 삶의 등불이 되어준 이들은 그 앎을 삶으로 살아온 이들이었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는 필자가 저작권을 가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