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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Jul 04. 2017

가뭄 속에서도 마침내 피어나다

# 6월의 풍경을 회상하다

뜰보리수


장맛비가 내린다.

지난봄부터 이어진 가물에 대지는 목말랐고,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연명하는 것들은 힘겨운 사투를 벌였다.

수도꼭지만 틀면 맑은 물 콸콸 나오는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편의점에서 1+1으로 시원한 생수를 단돈 얼마에 사서 갈증을 해갈하는 사람들도 대지가 얼마나 목마르며, 그곳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이들의 속이 얼마나 타들어가는지 알 수 없다.


7월에 들어서야 비다운 비가 내렸으므로, 6월의 대지는 가장 목말랐다.

그러나 그 목마름에도 불구하고 때가 되었다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제 할 일을 무던하게 해냈던 이들이 있다. 그 목마른 대지에서 끝내 살아남은 이들, 그들은 희망이다.


큰까치수영


여름휴가철이나 되어야 끝물에 만날 수 있었던 큰까치수영(큰까치수염)은 늘 노년의 끝자락을 보는듯했었다.

'저 꽃도 한창 피어날 때가 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은 늘 그 언저리였으나, 그 아쉬움은 이상하게도 꼬박 일 년이 지나 그들이 막 씨앗을 맺어갈 즈음에만 반복되었다.


그러나 올해 장맛비가 내리기 전, 막 피어나는 그들은 만났다.

어머니의 산소에서였다.

꽃을 좋아하시던 어머니였기에 묘지가 있는 야산의 야생화들을 산소 주변에 몇 포기 심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퍼진 것이 '큰까치수영'이었다.


인동덩굴(금은화)


인동덩굴은 겨울뿐 아니라 가뭄에도 강했다.

기어이 금색의 꽃을 피워내고, 그 금색의 꽃은 곧 은색의 꽃으로 변했다. 그리하여 '금은화'라는 이름을 얻었고, 한 겨울에도 푸른 이파리를 달고 겨울을 나므로 '인동덩굴(초)'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전 김대중 대통령이 좋아하시던 꽃이라고 한다.


덩굴식물이므로 숲 가장자리에 자란다.

덩굴식물이나 찔레 같은 가시덩굴을 무성하게 이루는 것들은 숲의 문지기 역할을 한다. 아마나 숲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특히 여름철에는 무성하여 숲 속의 신비를 누구에게나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갯메꽃


바닷가 모래에 뿌리를 내리고 살기에 목마름과 함께 뜨거운 햇살까지 감내해야 하는 꽃도 있다.

그들의 생명력은 줄기가 뚝뚝 끊겨도 기어이 뿌리를 내리고 또 하나의 개체가 되는 것으로 증명된다. 그래서 나는  갯메꽃의 매력을 꽃보다 줄기와 이파리에서 더 많이 느낀다.


목마름에도 불구하고 피어난 꽃들 중에서는 물을 좋아하는 꽃도 있었다.

산수국, 이름에도 '물'이 들어있으니 물과는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꽃이라 계곡의 습하면서도 물이 잘 빠지는 곳에서 잘 피어나는 꽃이다.


산수국


참꽃은 참꽃대로 헛꽃은 헛꽃대로 아름다운 꽃, 모든 조건이 다 갖춰지고 나서 핀 것이 아니라 몇몇 결핍에도 불구하고 피어났다.


결핍,
그것이 그에겐 장벽이 될 수 없었다.
조금,
완벽하지 않으면 어떠한가? 그게 최선인데



원추천인국과 부들과 우담바라(풀잠자리알)까지, 풍성하지 않았으나 가뭄이라고 피어나지 않은 꽃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야생의 6월에서 만날 수 있는 '뜰보리수'를 만났다.

가뭄 끝에 익은 열매라 비가림이 아니더라도 맛은 깊었다. 약간 떨떠름한 맛이 있기 마련인데, 달달했다.

가물이 준 선물인 셈이다.


일 년의 절반을 보내고 다시 시작한 절반, 인디언 주니 족은 '나뭇가지가 열매 대문에 부러지는 달'이라고 부르는 7월의 아침에 6월 가뭄에 피어난 꽃과 열매를 꺼내어 아침상을 차리듯 차려본다.


그리고 내리는 비에 감사한다.
절망하지 않고 피어날 수 있도록 대지를 적셔주어서 참으로 고맙다고.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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