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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Jul 22. 2017

술 담배 하면 교회 못 나가나요?

#05 담배와 술, 삼겹살과 장어와 추어탕의 딜레마

 돼지는 굽이 갈라져 쪽발이로되 새김질을 못하므로 너희에게 부정하니, 너희는 이러한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도 만지지 말라 이것들은 너희에게 부정하니라(레위기 11:7-8).                       

물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과 물에서 사는 모든 것 곧 강과 바다에 있는 것으로서 지느러미와 비늘 없는 모든 것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라. 이들은 너희에게 가증한 것이니 너희는 그 고기를 먹지 말고 그 주검을 가증히 여기라(레위기 11:10-11).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에베소서 5:18).



기독교가 우리 한국에 전래되던 시기는 가부장적인(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문화가 팽배하던 시기인 데다가 계몽되지 못한 약소국 가는 늘 강대국의 시달림 속에 살았으므로 대체적으로 무기력증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한국 기독교의 뿌리가 된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리에 세워진 소래교회가 외국인 선교사들이 아닌 한국인들에 의해 자생적으로 세워진 한국 최초의 교회(1883년)인 것을 감안할 때,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에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인 1950년대 부흥기를 맞이하였으므로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서 기독교는 전략적으로 가부장적인 사회구조에서 심각하게 인권을 유린당하는 사회적인 약자인 여성들을 선교의 1차적인 대상으로 삼았다.


무기력증에 빠져 살아가는 가부장들의 소일거리는 주로 '도박, 술, 담배'등이었으며, 이것이 패가망신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개신교 선교사들은 전략적으로 회심의 증거로 '도박과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것으로 삼았고, 이에 여성들은 개신교를 열렬히 환영했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개신교에서는 대체로 술과 담배를 금하고 있으며, 많은 이들은 이 문제 때문에 개신교를 등지고 있기도 하다. 개신교회에 나오고 싶어도 '술 담배'문제 때문에 교회에 나오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끊은 다음에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할 정도니 가히, 술과 담배는 기독교 신앙에서 큰 죄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정말 성서는 술과 담배를 금하고 있을까?


예수는 술주정뱅이(마시기 좋아하는 자)로 소문났었고, 사도 바울도 디모데에게 건강을 위하여 적당한 술을 마시라고 권했다. 최후의 성만찬 예식에서 예수의 피로 상징되는 포도주는 그 당시 그 지방의 일반적인 술이요, 예수의 첫 번째 기적은 가나안 혼인잔치에서 포도주를 만드는, 즉 술을 만든 기적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술을 마시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취하지 말라'이다.


구체적으로 '담배'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이사야서 55장 2절의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는 말씀에 근거하여,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 중 하나이므로 담배도 안 된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금연에 대한 성서의 근거는 없는 셈이다.


물론 술과 담배를 권장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들도 스스로 조절하고 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끽연과 음주는 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대체로 금주와 금연을 신앙인의 기본적인 결단이라고 주장하고 죄악시하는 보수적인 입장을 가진 이들은 그보다 더 큰 죄에 대해서는 침묵할 뿐 아니라 적극 가담하기도 하고, 동시에 성서에서 분명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들조차도 '시대상황'운운하면서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행동한다.


그들이 그렇게 성서에 근거도 없는 끽연과 음주가 정죄할 죄라고 주장하려면, 그들은 위에서 제시한 레위기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 삼겹살이나 장어구이, 추어탕 등을 먹는 것에 대해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사실, 공장식 축산의 문제와 먹을거리에 관한 성서적인 정의의 문제로 접근해 들어가면, 술과 담배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 삼겹살 같은 육식문화다.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문제가 생긴다.
그러므로 성서는 술을 먹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라
술 취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런 문제는 한국교회가 성서를 취사선택했기 때문에 온 문제라고 본다.
자신들의 신학적인 이데올로기를 합리화시켜줄 말씀만 취사선택하여 어떤 말씀은 고의적으로 배제하고, 어떤 말씀만 지극히 강조하면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정죄한다. 최근 성소수자(사회적인 약자)의 인권신장을 위해 노력해온 목사(임보라 목사)에 대해 몇몇 교단에서 이단이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들이 근거로 삼은 것은 성서에서 동성애를 금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무조건 사회적인 약자의 편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무시하고 있으며, 사랑을 단지 '육체적인 sex'로만 보는 누를 범하고 있다.

 왜 우리는 사랑을 함에 있어서 이성 간의 사랑만 해야 하는가? 그리고  사랑은 '육체적 sex'뿐이라는 천박한 생각은 어찌해야 하는가? 이런 진지함과 솔직함 없이 현대판 마녀사냥을 벌이는 이들은 이성 간의 성폭력에 대해 관대하고(자기 교단의 목사들의 성추행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반기독교적인 교회의 행태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빅엿을 줄 수밖에.
그러면 이들은 단번에 이렇게 말한다. '욕하는 것은 죄다!', '비판하지 말라!'라고 하셨다. 이런, 자기들은 남의 교단 목사를 비판하고 이단으로 몰아가면서 '빅엿'이라는 점잖은 말 한마디에?


결론을 내자.

담배와 술은 죄인데 왜 삼겹살과 장어와 추어탕은 죄가 아닌가?

좀 웃기지 않는가? 사실은, 그 어느 것도 죄라고 할 수 없다. 무엇이든 지나치지 않으면 말이다. 성서를 끊임없이 문자로 읽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그들에게 성서를 좀 문자로 읽고 그대로 살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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