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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Aug 07. 2017

그릇된 믿음엔 구원이 없다

# 08 회개하지도 않고 구원받았다고 착각하지 말라.


지금도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80년 5월을 생각하면 부끄럽고 자괴감이 든다.

5월 27일 계엄군에 의해 도청이 점령되었을 때, 그리하여 광주 민주화운동이 군부의 탄압에 의해 짓밟힌 다음 날인 5월 28일, 청량리에서 경주행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길에 올랐다.


1980년 5월 27일, 뉴스를 통해서 '계엄군이 광주의 폭도들을 진압했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1980년 5월, 내가 출석하던 교회의 목사는 '광주에서 빨갱이들과 연계된 폭도들이 폭동을 일으켰으니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라고 설교했으며,  그해 5월 그 무렵 철야기도회 때면,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기도'를 하는 순서에 목놓아 광주를 위해(?) 기도했다.


나는 당시 목사가 강단에서 선포하는 말씀은 곧 하나님 말씀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간 후, 선배의 자취방에서 광주항쟁과 관련된 비디오를 보았다. 아마도 <택시운전사>에 나왔던 영상도 일부 있었을 것이다.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고, 내게는 신앙의 지주였던 목사에게 속았다는 사실 때문에 분노했다. 그에 대한 반항으로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 세월, 그 목사는 은퇴를 했고 은퇴 후에도 명예목사니 뭐니 온갖 목사로서의 혜택을 누리며 지금도 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그 목사가 그전 광주를 향해 퍼붓었던 그릇된 설교에 대해 회개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나는 그가 <택시운전사>를 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를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그러나 이것이 헛된 애증이라는 것을 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는 자신의 신념이 옳았을 것이라 할 것이며, 당시 온갖 정보가 차단당한 상태에서 한 말에 대해서 왜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해 반문할 것이다.




1980년대는 학살자들이 권력을 잡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들에 의해 광주항쟁의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하던 이들은 목숨을 담보로 내놓아야만 했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었던 광주 비디오, 그리고 그때 나는 목사들 중에서도 '광주의 진실'을 밝히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이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을 만났기에 나는 신앙을 지킬 수 있었고, 목사가 되었다.


1987년 6월까지 군부의 기세는 등등했지만 결국 그들을 무릎을 꿇었다(아니, 꿇는 척했다).

그리고 어리석은 국민은 그들의 위장술(?)에 속아 국민투표로 광주학살의 동조했던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그들이 정죄를 받기까지는 너무도 오랜 세월이 지났고, 그들의 죄과에 비하면 턱없는 형량으로 그들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이런 과정 속에서 권력과 야합하기를 일삼는 한국의 보수 대형교회들과 목사들이 있었다.

그들의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기보다는 반공 웅변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켜 자본이라는 맘몬신에 야합하는 거짓 설교였지만 맹목적인 신앙을 가진 이들은 열광했다. 그들은 지금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예수 천당 불신지옥!"으로 요약할 수 있는 그들이 설교는 더 나아가지 않는다.
표면적인 기독교 진리의 단편들에만 머물러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역사 속에서 살아가야 할 신앙인의 책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역사의 진실에 대해 무관심하다. 아니, 무관심하다기보다는 의도적으로 권에 야합한다.

광주 민주화운동뿐 아니라 최근 세월호 사건과 촛불집회 등에서 보여준 그들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성조기와 이스라엘 기를 들고 자신들의 신앙(?)을 확증한다.  


이런 성향을 가진 이들은 성서의 정신에 따라 행동하지 않는다.

성서에 정신에 따르면 사회적인 약자와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것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들이 삶이어야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권력자들과 한 편이 되어 그들을 억압하는 일에 열심을 낸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이야말로 금과옥조요, 신실하다고 여긴다. 이런 이유로 그들은 불행하다.

왜냐하면, 죄인 줄도 모르기 때문에 회개할 기회조차도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릇된 믿음, 거기엔 구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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