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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Aug 18. 2017

보이는 것만 믿으십니까?

# 보이는 것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배롱나무(목백일홍)의 꽃술


사람은 '보이는 것'이 아니면 믿지 못한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함으로써 존재함을 증명하는 과정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죽하면 믿음이라는 것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믿는 것(히브리서 11:1)'이라고 했을까? 


허브망원경의 발달로 말미암아 우리는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별이 존재함을 인정하게 되었다. 보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비로소 본 뒤'에는 그들의 존재함을 부정하는 이가 없다. 누군가 보았으므로, 보지 못한 누군가도 믿게 된 것이다. 나는 허브 망원경이라는 것 자체를 아예 본 적이 없으므로, 망원경을 통해서 본 우주를 직접 본적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존재함을 부정할 수 없으며, 실재함을 믿는다.


꽃은 우리가 아는 만큼, 보는 만큼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비로소 내게 다가와 꽃이 된 것처럼, 꽃은 우리가 보는 만큼 보인다.
보면 알게 되고, 알면 더 깊이 보게 되므로 '앎과 봄'은 별개의 것이 아니라 하나다.
마치 우리의 지성이 진정한 지성이 되려면 실천이 뒤따라야 하는 것처럼진정한 '앎'에 이르려면 '삶'이 있어야 함과 다르지 않은 것이리라.


꽃술


꽃은 곤충을 그냥 초대하지 않는다.

곤충도 꽃의 아름다움에 홀려 초대의 응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얻을 것이 있을 때 꽃의 초대에 응한다. 육안으로도 꽃술은 자세히 살펴보면 볼 수는 있지만, 우리 눈의 한계를 뛰어넘는 확대경을 통해서 우리는 또다른 세계로 초대된다. 곤충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우리가 맡지 못하는 향기를(그것이 꼭 좋을 필요는 없다.) 맡고 초대에 응한다.


어떤 사물을 확대경으로 바라볼 때가 있다.

육안으로는 확인되지 않던 모습, 그것은 이미 내가 보기 전에도 존재했으나 나는 보지 못했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존재했음에도 내가 보지 못했을 뿐이고 몰랐을 뿐이다.


존재라는 것은 그렇다.
자기의 선 자리라는 한계를 가지고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자기의 선 자리뿐 아니라 타인의 선 자리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공감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내가 보고, 안 것만이 진리가 아니라 타인이 보고 안 것도 진리라는 사실, 그래서 진리는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성숙한 사람이다.


꽃술(암술)
보이는 것만 믿는가?
한계에 갇혀있는 인간은 모든 것을 다 볼 수 없다.


물론, 허상을 믿으라는 것은 아니다.

내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으며, 내가 보지 못한 이면에 진실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이런 삶의 자세로 살아가면 좀더 부드럽게 타인을 포용할 수 있고, 타인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다.


넓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은가? 
이해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거나 삶의 지평을 넓혀가고 싶은가?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함을 인정하라.
분명, 이전에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되는 기적을 만날 것이다.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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