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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Mar 19. 2018

Secret Garden

# 들어가는 말

#들어가는 말


'초록 생명'을 보면 나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들이 뿌리내린 흙, 그들을 품어준 흙을 만질 때면 나도 모르게 겸손해진다.

서울 근교에 살면서 고등학교 시절까지 부모님의 농사일을 도왔다. 어쩌면 이 경험은 흙과 자연에 대한 거부반응으로 나타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대학시절 자취를 할 때, 어려서부터 자연으로부터 먹을거리를 얻었던 경험들은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동기들은 어찌 되었든 푸짐한 밥상을 차리는 나를 보고 놀랐다.

민들레 싹이며, 쑥이며, 돌나물이며, 냉이 같은 것은 물론이고 때론 메뚜기와 우렁이와 가재 같은 것들도 자취방의 밥상에 올랐다. 물론, 모두 자연에서 얻은 것이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접한 자연은 자연스레(그래서 자연이겠지만)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대학 졸업 후, 제주도 농어촌에 있는 작은 교회(종달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할 기회가 주어졌다.

딸린 텃밭이 있었고, 사철 푸른 제주는 지천에 들나물이며 산나물이 가득했다. 식탁에 올릴 채소들을 가꾸는 재미에 빠져들었다. 거기서 '생태신학'을 깊이 음미했고, 자연에 대한 관심은 텃밭을 넘어 제주도의 산야를 향하게 되었다. 그것이 '들꽃여행'의 시작이었다.


식물도감에 나오는 꽃들을 거반 사진으로 담았을 무렵, 나의 고향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은 척박했고, 나는 흙에 대한 그리움을 옥상 텃밭에서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옥상 텃밭의 한계와 목회지의 변경과 이사는 하루 종일 흙이라고는 밟지 않아도 될 도시였다. 자연이 많이 그리웠다.


그런데, 행운처럼.

그늘진 땅이긴 하지만 제법 '정원'이라는 이름을 붙일만한 공간이 선물처럼 주어졌고 나는 그곳을 '비밀 정원'이라고 이름 붙여 주었다. 그리고 꼬박 이 년을 살펴보았다. 제법 이름다웠다. 그냥 그렇게 마음으로 느끼려고만 했다.

수선화 이파리


그런데 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가 <땅의 예찬>이러는 책을 냈다. 그 책을 읽은 후 나의 비밀 정원에 대한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원 일은 내게는 고요한 명상, 고요함 속에 머무는 일이었다. 그것은 시산이 멈추어 향기를 풍기게 해주었다. 정원에서 일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땅에 대해, 그 현혹하는 아름다움에 점점 더 큰 존경심을 품게 되었다(땅의 예찬 pp. 8-9 중에서).


마침, 봄이 오고 있는 중이니 지금부터 관찰하면 사계절 내내 조밀하게 관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명 봄은 왔으니 나의 비밀 정원에도 초록 생명의 기운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확인하기 위해 비밀 정원에 올랐다.


놀라지 마시라.


비밀 정원 울타리 밖에는 봄나물 달래가 푸릇푸릇 올라왔고, 앵두나무와 개복숭아 나무는 곧 터질 듯 꽃망울을 달고 있고, 개나리에 잔가지는 물이 잔뜩 들었고, 애기똥풀은 이파리를 풍성하게 냈다. 그리고 이야기의 첫 번째 주인공이 될 '석산(꽃무릇)'의 새싹이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석산의 새싹

수선화과의 석산(꽃무릇)과 혼동하는 꽃은 '상사화'다.

어쩌면 서로서로 그리워하지만 결국 만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상사화와 석산은 과가 같을 뿐 전혀 다르게 피어난다.


석산은 이른 봄에 이파리를 내고, 가을에 이파리가 사그라들면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운다. 이에 반해 상사화는 먼저 꽃대가 올라와 꽃을 피우고 꽃대가 사라지면 이파리가 올라온다. 이파리의 모양은 수선화과의 식물이 그렇듯이 구분이 잘 되지 않는다. 아무튼 석산이나 상사화나 꽃과 이파리가 서로를 만나지 못한다는 점에서 '상사화'인 셈이다. 수선화과의 수선화는 이파리와 꽃이 함께 있으니 사랑을 만끽하고 있는 꽃이이라.


만나지 못하면서 그리워만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수많은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상상력이라는 것은 곧 시가 되고 문학이 되고 음악이 된다. 상상력이 가지는 힘은 '확장'하는 힘이다.


석산이 필 무렵이면 꼭 등장하는 유명한 사찰들이 있는데 석산과 사찰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 탱화를 그릴 때 탱화의 보존을 위해 석산의 뿌리에 있는 성분을 사용한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사찰 주변에 석산이 많은 것이다.


지난해 5월은 족히 되었을 것이다.

내가 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아버린 지인이 석산을 가져와 비밀 정원에 심었다. 한 해는 지나야 꽃을 보겠다 생각했는데, 그해 가을에 그만 꽃대가 올라오고 꽃이 피었다.



그날의 감격, 빛 좋은 날, 이슬까지 내리고 베짱이까지 찾아왔으니, 서울 하늘 아래서 이런 행운을 누릴 줄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시나브로, 흙이 있으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어 무심코 지나쳤으며 이름만 '비밀 정원'이리고 붙여주었다.


간혹 도심에서 살아가는 나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는 하겠지만, 그게 어떤 '예찬'에 이를 정도까지는 아닐 것 같았다. 그냥, 자연이 그리울 때면 자연의 품에 안기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병철 교수의 <땅의 예찬>은 나의 '비밀 정원'이 특별한 공간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비밀정원'이라는 연재를 하게 된 까닭이다.

벌써 너무 많은 초록 생명들이 올라왔다. 그러나 천천히, 정원이므로 사람의 손길이 깃든 것들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까지 일 년 동안 정원을 보고, 들으려고 한다.


한병철 교수의 책에서 영감을 받은 바 그의 글을 하나 더 인용한다.


우리는 땅에 대한 경외심을 모조리 잃었다. 더는 땅을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땅의 예찬 p.11).

# 2018년 봄 여름 가을 겨울, 비밀의 정원에서 만나는 초록 생명들의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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