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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Oct 02. 2018

하나님은 인간을 시험하지 않으신다

# 고난은 하나님이 인간을 시험하기 위해 주는 것이 아니다.

참으로 극복하기 쉽지 않은 문제지만, 

'고난'에 대한 부분만 잘 극복한다면 우리는 상당한 신앙의 진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 고난 앞에서 혹시라도 신 앞에 무슨 죄를 지어 그런 결과가 온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다가 이런 결론을 내린다. 


"그것은 신의 뜻이며, 나를 연단하기 위해서 주신 것이다."


그런데 고작 신은 그런 분인가?

우리 삶에 다가오는 모든 고난이 그런 것이라면, 인간사에 느닷없이 다가오는 고난, 그 고난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나버리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인도네시아의 쓰나미로, 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가 흙더미 속에 깔려서 사망하고, 간절한 소원과 기도와 노력 끝에 결혼 십여 년 만에 낳은 아기를 잃어야 했던 부모가 받는 고난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것이 견딜만한 고통인가? 만일, 그런 아픔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가족이나 그들을 잃은 이들이 견딜 만큼 강인해서 그런 고난을 경험한다면, 그런 고난을 견딜 수 없을 만큼 약하면 고난은 오지 않는 것일까?



너무 쉽게 고난에 대해서 신의 뜻이며, 능히 견딜만할 것이며 혹은 잘못한 것이 없는지 성찰하라고 하면서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사이비맹신적인 신앙을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만일 신이 내게 고난을 주는 대가로 나를 더 많은 복을 주시겠다고 한다면, 나는 기꺼이 거부할 것이다. 복을 덜 받아도 좋으니 지금 이대로 별 일없이 평범하게 살겠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분도 아니시고, 고난을 주시는 분도 아니시다.

단지, 그분은 우리가 고난 중에 있을 때 함께 하시며 고난의 현장에서 함께 눈물 흘리시며 나를 홀로 있게 하지 않는 분이시다. 그렇게 무능력한 분이 하나님이시다. 이렇게 무능력한 하나님이기에 감히 우리는 그를 도울 수 있고, 그를 도움으로 우리는 감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증거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가난한 자, 사회적인 약자로 우리 앞에서 고난을 받고 계신다.

우리에게 그분이 요구하는 것은 아주 간단하다. 


"그들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사회적인 약자들과 고난당하는 자들을 난도질하며 온갖 혐오를 내뱉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내뱉은 온갖 거룩함을 포장한 말들, 그것은 모두 거짓투성이다. 거기엔 혐오와 폭력과 가짜만 판친다. 그런 이들은 아주 거룩한 언어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희들이 받는 고난은 당연한 죄의 결과야! 하나님이 주신 형벌이지!"


그러나 그들은 틀렸다.

하나님은 시험하시는 분도 아니시고, 고난을 주시는 분도 아니시다.

오로지 시험에 빠진 이들과 고난 중에 있는 이들의 곁에 계시며, 너 홀로 그 일을 감당하지 않음을 확증하시는 분일뿐이다.



# 이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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