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겨울은 몸이 움츠러드는 계절이다.
겨울은 자연에게 있어 쉼의 계절이다.
계곡의 돌 틈에는 겨울에 피어나 초록으로 단장하는 것들이 있다.
자연의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 자체가 그렇다.
오래된 바위나 나무 같은 곳에서 자라면서 그들을 서서히 흙으로 만드는 존재다.
이들은 겨울에 작디작은 곤충들과 씨앗들을 품어 겨울을 나게 하는 역할도 한다.
그야말로, 자연의 옷이다.
혹시라도 겨울 속에 숨어있는 봄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계곡을 따라 거닐다가 햇살에 빛나는 존재들을 만났다.
그들은 작은 이끼의 삭에 맺힌 이슬방울이었다.
서리가 얼어 이끼의 삭에 얼어있다가 햇살에 녹으며 이슬처럼 맺힌 것이다.
신비, 자연의 신비다.
어찌 이 작은 생명이 겨울에도 얼어 터지지 않고 자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들을 보면서 삶을 돌아본다.
삶이란, 평온할 때에만 피워내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고난 중에도 피워내는 것이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작은 모습으로 피어나는 존재, 꽃이라고도 불리지 못하고 '삭'으로 불리는 존재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단 한 번도 인간의 붙여준 이름 때문에 절망한 적이 없다.
그건 인간이 붙여준 이름에 불과해.
나는 나로 피어날 뿐이야.
당당하다.
우리는 늘 남이 나를 어떻게 불러주는지, 혹은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연연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내 안에 있는 씨앗을 싹 틔워 열매 맺는 일보다는 얼토당토않게 남이 바라는 씨앗을 틔우려고 허망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한 줌의 햇살이라도 비추면 이슬방울이 되어 물방울 보석처럼 빛난다.
그러다가도 이내 한 줌의 햇살이 거둬지면 이슬방울은 다시 얼어붙어 얼음꽃이 된다.
나는 겨울이라 더 푸른 이끼의 마음을 다 알지 못한다.
저렇게 작은 생명이 저토록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까닭도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렴풋이 나는 그들에게 듣는다.
삶이란
이토록 치열한 것이지만 아름다운 것이다.
어떤 고통 속에서도
아름답게 피워내야 하는 것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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