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춘 지절
입춘대길, 건양다견!
저 남도에는 봄소식 충만하지만 중부지방은 아직 봄이 멀다.
봄이라서 입춘이 아니라, 봄이 오기로 뜻을 세운 절기가 입춘인가 싶다. 이렇게 봄이 뜻을 세우면, 어김없이 봄은 오기 마련인지라, 겨우내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봄'이라는 명사는 '보다'의 동사형이니 볼 것이 많은 봄이다.
그래서 봄은 시각적일 것 같은데 '들음'과 관련되는 '소리'로부터 봄이 옴을 계곡에서 느낀다.
겨우내 얼음 속에서도 멈추지 않았던 계곡, 그러나 소리는 얼음장에 갇혀 미미하게 들렸다.
이제, 여기저기 계곡을 덮었던 얼음이 녹아내렸다.
녹아내린 계곡의 작은 얼음 구멍들은 스피커가 되어 계곡 물소리를 공명 시키어 더 우렁차게 한다.
"이제 겨울은 간다. 봄이 온다."
라고 겨울이 외친다.
물은 맑고 시원했다. 연중 가장 깨끗한 때가 요즘이 아닐까 싶다.
말발굽을 닮은 고드름, 봄을 향해 달려가는 준마의 말굽 같기도 하고 겨울과 봄 사이를 이어주는 전령사 같기도 하다.
봄은 이렇게 '소리 없이'가 아니라 우렁찬 소리를 내며 우리 곁으로 오는데, 우리는 도심의 소음과 일상의 소란함들로 자연의 소리를 듣지 못할 뿐이다. 세상의 소식은 아주 작은 파열음만으로도 신경 곤두서게 하는데, 자연의 소리는 제 아무리 커도 평정심으로 인도한다.
추운 겨울, 바위에서 자라난 이끼들의 마음을 알지 못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조금 더 빨리 봄이 찾아온다.
자신들은 겨울이 좋지만, 또 다른 이들은 봄을 기다리니 타자를 위하는 삶을 기꺼이 살아가는 중이다.
물론, 자연은 이렇게 저렇게 이롭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될 뿐이다. 그래서 자연이다.
지난가을, 차마 떨구지 못한 나뭇잎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매서운 추위도 바람도 그들을 어쩌지 못했지만, 여린 새싹이 그들을 간지럽히면 더는 참지 못하고 가지와 작별의 인사를 나눌 것이다.
문득, 우리의 가는 순간도 이렇게 자연스러우면 안 될까 싶은 생각을 했다.
죽음을 맞이하는 인간의 태도는 대부분 성숙하지 못하고, 극히 일부만 성숙하다. 세상 속에서 살아가므로 세속에 물들지 않을 수 없고, 세속이라는 것이 죽음을 왜곡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길, 이어진 길들을 본다.
네트워킹?
젊은이들의 트렌드를 이해하는 어른이 되고 싶어 '신조어'를 공부했다. 소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스트 결과는 빵점이었다. 마음만 소통하고 싶었던 것이지 그런 마음도 노력도 없었던 것이다.
인싸, 만반잘부, 갑분싸, JMT, 혼틈, 아이엠 그루트, 탈룰라, 여포, 자만추, 뽀시래기....
들어는 봤는데 정확한 뜻을 모르겠다.
단절, 이 단절의 현상들이 사회 곳곳에 만연하다. 그리고 그것을 이용하여 자기의 잇속을 챙기는 이들이 넘쳐난다. 계곡물소리는 높아지고 봄은 오는데, 역사는 거꾸로 겨울을 향해 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소통의 부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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