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하늘에서 만난 봄꽃
아직 꽃샘추위가 남아있다.
미세먼지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던 지난겨울이었기에 꽃 구경은 호사스럽고 맑은 하늘이나 볼 수 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러나 회색빛 도시에도 어김없이 봄이 왔다.
이미 오래전부터 봄은 왔고, 점점 무르익고 있는 중이며, 어느새 총총거리며 크로노스처럼 총총거리며 갈 것이다. 그래서 봄은 사계 중에서 가장 아쉬운 계절이다.
아직 이른 봄이라 여겨질 때, 경복궁을 거닐다 히어리 꽃망울을 보았다. 그때가 2주 전이었으니 지금쯤은 그곳에도 히어리가 한창 피었을 것이다.
이 꽃을 처음 만난 것은 가평의 '아침고요 수목원'이었다.
꽃에 대해 무지할 때였으므로 그냥 '예쁘다!'하고 지나쳤는데 봄이면 히어리의 잔상이 늘 아른거렸다.
언젠가는 그가 필 무렵에 다시 보고자 했지만, 그를 만나지 못하고 속절없이 시간은 흘렀다.
그 시간이 어림잡아 20년은 된듯하다.
그 꽃을 경복궁에서 만날 수 있다니 마음 설레는 일이었지만, 그곳 역시 먼 곳은 아니었지만 하루하루 시간을 흘려보낼 뿐이었다. 그래도 올봄에는 만나러 가리라 마음먹으면서도 차일피일 미뤘다.
아마, 그냥 그렇게 올해도 지나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그 꽃을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남산공원에서 만났다.
이런 것이구나 싶다.
소중한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데 먼 곳에서만 찾다가 일상으로 다가온 소중함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것, 어쩌면 이것이 인간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꽃샘추위로 약간의 상해를 입긴 했지만, 토종 꽃 미선나무도 피어났다.
쉽게 볼 수 있는 꽃은 아닌데, 산책길에 행운처럼 그를 만났으니 '느릿느릿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새삼스럽다.
'어디쯤에는 가야 만날 수 있을 거야'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우리의 일상과 아주 가까이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봄꽃들은 그렇게 하나 둘 내게서 멀지 않은 곳에서 피어남으로 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진달래가 피었으면 완연한 봄이 아니겠는가?
나물로 먹어도 좋을 만큼 쑥쑥 자란 망초대, 개떡 만들어 먹어도 좋을 쑥, 봄 향기 가득한 냉이가 양지바른 곳에서 한껏 자라난다. 꽃다지와 냉이는 노란 꽃, 하얀 꽃을 피워댄다.
이렇게 일상에 봄이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봄이 보이니 봄이 왔음을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
꽃도 꽃이지만, 저 꿀벌은 어디에 있다가 이렇게 또 날아왔는가?
이미 한 달 전에 남산 한옥마을에서 검은 나비를 보고 감탄을 했는데, 꿀벌을 만나니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가고 있는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고맙다.
아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서울 성동구, 용산구, 중구를 잇는 매봉산에도 봄이 왔다.
매봉산은 이미 3월 초에 야생의 복수초를 피워내어 나를 놀라게 한 바가 있다. 누군가 식재한 것인 줄로만 알았는데 야생의 복수초 그대로였다.
야생의 복수초도 서울은 벗어나야 만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서울 하늘 아래에서도 여전히 피어나고 있었고, 심지어는 올해 경복궁 뜰에도 복수초가 노랗게 피어나는 것을 만났다. 물론, 경복궁에서 만난 복수초야 사람의 손길을 탔지만, 겨울을 보내고 스스로 피어났다는 점에서 야생화와 다를 것도 없다.
온실에서 자란 것이 아니라면, 혹독한 추위를 맨 몸으로 견디고 피어난 것이라면 화분에 담겼어도 야생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어제(3월 24일) 서울 하늘 아래서 만난 봄꽃. 그들이 소중한 것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곁에 있다고 말한다. 생각해 보니 정말 소중한 것은 가까이 있고, 심지어는 공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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