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쟁의 노예로 살 것인가, 주체로 살 것인가?
현시대를 상징하는 단어 중에서 '경쟁'이라는 단어는 우리 일상에 내재화되어 있다.
'경쟁'이라는 단어에 살을 붙이면 '빨리빨리'가 되겠고, 그 단어를 풀면 '숨 가쁘게 살아가는 삶'이 되겠다.
바쁘게 빨리빨리 살아가는 것만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이라 배웠다.
왜 경쟁해야 하고, 경쟁에서 이긴다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남들이 뛰니까, 나도 뛰어야 한다.
경쟁의 목적은 이기는 것이고, 승자는 극소수이거나 '하나(1등)'이며, 그들은 '독식'이라는 특권을 누린다.
이런 식으로 신자유주의라는 험악한 짐승을 인류는 키워왔으며, 경쟁을 당연하게 여기고, 그 경쟁의 법칙을 또한 당연하게 생각하는 패배자들을 양산해 내었다.
경쟁에서 졌으므로, 현재 나의 삶은 당연한 것이다.
혹은
경쟁에서 이겼으므로, 현재 나의 삶은 당연한 것이다.
한 마디로 '거짓 신화'다.
이 거짓 신화는 경쟁의 법칙을 신봉하는 이들의 삶을 먹고 산다. 그들이 많이 지면 많아질수록 힘을 얻고 마침내 군림하게 된다.
지난 온 삶을 돌아본다.
그중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간과 아름다웠던 시간이 언제였는지 돌아본다.
'천천히 살아왔던 시간'이었다.
천천히 걷던 그 바닷가와 숲길이 뇌리 속에 강력한 추억의 그림자를 그린 것처럼 숨 가쁘지 않게 내 삶이 속도로 살아왔던 시간들이 가장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된다.
그리고,
바쁘게 경쟁하며 살았거나 천천히 느릿느릿 살았거나 물질적인 면에 있어서는 큰 차이도 없더라.
가진 만큼 피곤하고, 신경 쓸 일이 많고, 덜 가진 만큼 편안하고 신경 쓸 일도 없었던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자본으로 사느냐, 삶으로 사느냐 정도였던 것이다.
경쟁의 노예로 살 것인가? 주체로 살 것인가?
주체로 살아가는 쪽을 택하길 바란다.
삶의 속도를 늦추고 조금 천천히 느릿느릿 살아보라.
빨리빨리 살아갈 때, 보지 못하던 것들과 느끼지 못하던 것들이 얼마나 큰 보물인지 알게 될 것이다.
그걸 얻기 위해서 그렇게 바쁘게 살아올 필요가 없었던 것임을 알았는데, 이미 돌이킬 수 없다면 마음이 참으로 힘들지 않겠는가? 아니면, 죽는 순간까지 그 거짓 신화를 붙들고 살아가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