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기억하는 나라의 미래는 밝다
18년 만에 시간이 멈춰진 곳처럼 느껴지는 그곳, 캄보디아를 다시 찾았다.
첫 번째 방문지는 '러시아 마켓'이었다.
2001년 방문 기념으로 러시아 마켓에서 산 참으로 멋진 은반지가 있었는데 분실했다. 그 뒤로 늘 생각했다.
'캄보디아에 다시 간다면 러시아 마켓에 가서 그런 은반지를 하나 살 거야.'
그와 비슷한 은반지는 없었지만, 고르고 고른 끝에 손가락에 잘 맞는 은반지를 10달러 주고 샀다.
이전보다 도로 사정도 좋아졌고, 주거환경도 많이 개선되었고, 교통환경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 본질에 있어서는 큰 변화가 없어 보였다. 시간이 멈춰진 도시처럼 말이다.
이전에는 발 고린내 같은 냄새 때문에 먹지 못했던 두리안, 이번에는 눈 딱 감고 먹어보리라 생각했다.
생각을 실천으로 옮겼다.
입맛이 변한 것인지, 십여 일 머무는 동안 그리 싸지 않은 두리안을 4번이나 사 먹을 정도로 두리안 맛에 흠뻑 빠졌다. 그 이전에 가장 맛있게 먹었던 '미연(용안)'은 입맛이 변화로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이렇게 세월이 가면 사람은 변하는 것이다. 자잘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입맛까지도.
며칠은 오랜만에 들른 캄보디아의 변화를 전방위적으로 스캔하며 옛 추억을 떠올리느라 분주하게 보냈다.
여행의 말미에 접어들면서 반드시 들러야 할 곳, 캄보디아에 들렀다 그냥 가면 내내 후회할 것 같은 곳을 찾아다녔다. 그중 하나가 '킬링필드'였다.
킬링필드의 역사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독자들께서 잘 아실 것이다.
1,700여 명의 민간인이 크메르루즈에 의해 학살당한 곳, 제노사이드의 현장이다. 그 현장일 뿐 아니라 적나라한 역사의 현장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헌화를 한 후, 학살의 현장을 돌아보았다.
처음 그곳을 방문했을 때에도 느꼈지만, 다시 보아도 다소 충격적이다.
그런데 이 충격적인 장면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다.
우리 민족도 수없는 학살을 당했지만, 그 학살의 현장들은 적나라하지 않다.
심지어는 제주 4.3 평화공원조차도 그 깊은 아픔을 가슴 깊이 새길만큼 적나라하진 않다. 모형으로 만들어진 역사의 흔적과 실제를 전시해 놓은 역사의 흔적이 주는 강도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이다.
참으로 무례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자신들이 저지른 역사의 과오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발하는 일본, 그들의 나라니까 편협한들 그 나라의 수준이니까 그냥 그러려니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친일 수준을 넘어서 매국적인 발언을 하는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이들의 행태는 가히 절망적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 땅에서 활개를 칠 수 있는 이유는, 역사의 기억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너무 쉽게 잊고, 망각하고, 기억하지 않으려 한다.
망령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빈부격차가 심하고, 수직상승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 우리나라가 평가하듯 '후진국'이요, '못 사는 나라', '부패가 심한 나라'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역사를 대하는 방식을 보면서 그 나라의 미래를 밝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편하지만 직시하고, 불교 국가답게 자신들이 업보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받아들이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자신의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그것은 분명 큰 동력이 되어 그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민족에게도 미래는 없다.
총칼을 들고 전쟁하는 시대는 서로를 필멸의 시대로 안내할 것이기에 다른 방식의 전쟁을 촉발한다. 그 한 방식이 최근 일본의 도발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일본 편을 들고, 그들을 이용해서 현 정권을 흔들어 권력을 잡아보겠다는 발상을 하는 이들이 있다. 노골적이지 않으며 아주 점잖게 타이르듯, 이 나라를 위하는 양 자신들의 주장을 펼친다. 이들의 공통점은 역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들에게 나라를 맡길 수가 없다.
외세에 굽신거리며, 그들의 눈치를 보며 안위하고자 하는 식민지 노예근성에 찌든 이들에게 이 나라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
킬링필드를 돌아본 이후,
캄보디아의 미래는 지금 보이는 현상처럼 암울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조국 대한민국은?
여전히 혼돈이다.
36년 치욕의 역사를 왜곡하고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아직도 바로잡지 못했음에도 여전히 친일파가 날뛰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