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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Jun 24. 2019

시편 묵상 - 시편 1편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그대

                                                                                                                                                                                                                               

개역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1~2)


메시지

그대, 하나님께서 좋아하실 수밖에!

죄악 소굴에 들락거리길 하나, 망할 길에 얼씬거리길 하나. 배웠다고 입만 살았길 하나,

오직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밤낮 성경말씀 곱씹는 그대 - Instead you thrill to GOD's Word,


시편 사색

군자의 즐거움 오래 가누나 선을 행하니 온갖 복이 모이고 

무도한 이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소인배와 함께함을 부끄러이 여기네

가볍기 그지없는 오만한 자 멀리하고 저들과 같이 앉음 탐탁히 여기잖네.

거룩한 말씀 속에 한가로이 거닐며 온종이 말씀 안에 젖어들기 즐기네.


복이란 무엇인가?

맘몬의 주입한 대로 '돈'으로 상징되는 것을 누리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시편에서 이야기하는 '복의 차원'은 세상적인 가치관과는 다르다. 


세 번역서를 모두 종합해 보면, 


복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개역)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히는 것이며(메시지), 하나님의 말씀이 주장하는 삶을 살아감을 의미한다.

그 말씀 안에 젖어들면(시편 사색) 군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들을 좋아지며, 선하게 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함으로 지식적인 차원을 넘어 삶의 차원으로 나가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식의 차원을 넘어 지혜의 차원으로 삶을 주장하는 차원으로 스며들든 사람들은 

소인배들과 함께 하지 않는다.


시편 사색에서는 소인배, 개역성경에서는 오만한 자, 메시지에서는 배웠다고 입만 나불거리는 이들을 의인과 대비되는 악인으로 표현한다. 그러므로 '악인'은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이라는 협소한 의미만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악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하면서도 삶으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그대이시길, 

하나님께서 좋아하는 사람들의 삶은 시냇가에 심긴 나무와도 같은 삶을 살아간다.

세상이 제 아무리 맘몬이 지배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세상이라고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나아갈 수 있으니 복 있는 사람이요, 군자가 아닌가! 

소인배 신앙을 극복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주장하게 해야 할 것이다. 

수많은 말씀을 머리로 알면서 삶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곧 '오만한 자(소인배)'인 것이다.


                                                                                                                                                                                                                                 

150일, 하루에 한 편씩 시편 묵상을 하고자 한다.

요즘 오경웅의 <시편 사색>(송대선 옮김),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 번역, 영문>, 개역성경을 통해서 시편을 묵상하고 있다.


어떤 날은 서너 편씩 읽기도 하고, 

어떤 날은 그냥 지나치기도 하는데, 바쁜 일상이 전개되면 또 며칠 묵상을 쉬게 된다.

꾸준함 묵상을 하려면 꾸준히 묵상한 결과물들을 정리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말씀을 묵상할 때면, 순간순간 말씀의 본질에 깊이 다가가는 것은 좋은데, 이내 잊어버리고 만다. 찰나의 깨달음, 단상들을 정리하는 것도 나름 나의 신앙과 생각을 정리하는 자료로 남을 것이다.


최근에 실감하게 된 사실 중 하나는(아주 다행스러운 것이지만),

인간은 망각하는 존재며, 거듭 반복하고 묵상하는 가운데 더 깊은 사색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나면 깨달음을 깊고, 그 어떤 것은 차후에 자료로 사용하고 싶은데 일주일만 지나면 내용이 아른거린다. 그래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생각이 나기도 하지만, 안 나는 게 더 많다. 그래서 최근에는 공책이나 문서가 아니라 카페에 정리를 해보았다.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고, 문서나 공책에 정리한 것들보다 훨씬 수월하게 독서한 책의 내용을 재음미할 수 있었다. 

그러다 문득, 좀 더 체계적으로 깊게 시편의 말씀을 음미하고 정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분히 충동적으로 시작했음을 밝힌다.  

시편 1편으로 시작하면 150일의 여정이 될 터이다. 올해 여름휴가기간에는 머리를 비울 작정이므로, 대략 160일 정도 걸릴 것이다. 6개월 정도의 시간 시편의 숲을 천천히 걸어가며, 묵상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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