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대밭에 바람이 분다.
수많은 댓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단 한 번도 같은 모습이 아니다.
흔적을 남기지 못하고 떠나버린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존재했으나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일까?
사람은 본 것만 믿으려고 한다.
그러나 사실, 보지 못하는 것이 더 많으며, 보지 않았으면서도 본 것처럼 믿는 것이 더 많다.
시간의 중첩,
눈으로 본 것들을 하나 둘 켜켜이 쌓아 시간이 겹치면 눈으로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된다.
보지 못하던 것을 보는 것, 그것의 다른 말은 깨달음이다.
의식의 변화요, 회개, metanonia다.
깨달음 뒤에 오는 것은 '혼란'이다.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은 필연적으로 혼란스러움을 가져온다.
그러나 그것은 온전한 성숙을 위한 것이므로 '알에서 깨고자 하는 자', 그것을 피할 수 없다.
새해가 밝았다.
시작과 끝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
시작을 알면 끝을 알고, 끝을 알면 시작을 안다.
두 물이 하나 되는 두물머리에 섰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하나 되는 곳, 그 둘은 서로 다른 것이었을까?
올해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끊임없이 보는 것이리라.
보지 못하던 것을 보고,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이리라.
그것이 눈뜸의 기적이 아니겠는가?
세상은 온통 아름다운 것들의 보물창고다.
어쩌면, 그것이 사람이 그 무엇보다 아름다울 수 있는 유일한 까닭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는 것이 아픔이라고 해서 그것만을 본다면 아픔을 다 본 것이 아니다.
아름다움도 그렇다.
본다는 것은 직면하는 것,
직면한다는 것은 얼굴을 맞대고 보듯 본다는 것,
보았음은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
깨달음은 의식의 변화를 가져오기에 본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누구나 보이는 것을 본다.
그러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자 하는 자, 그는 비로소 '알'에서 깨어날 것이다.
새해에는 보이지 않던 것을 보는 삶이 되어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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