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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Jul 04. 2019

시편묵상 13편

시편 13편 –  신앙의 우물에서 기도를 긷다.

시편사색 

주님 저를 돌아보지 않으시기에 

이내 마음 근심으로 가득하옵고 제 혼은 점차 사위어갑니다

언제까지 입니까? 

원수들은 내리보며 짓누르는데 어느 때에야 평안을 얻으리이까?(2)


개역성경

나는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5)

     

메시지

하나님, 나의 하나님, 나를 눈여겨봐 주소서.

Take a good look at me, GOD, my GOD;

원수에게 당하지 않고

넘어져도 비웃음당하지 않도록

나, 두 눈 똑바로 뜨고 살고 싶습니다(3~4).


비탄시에 해당하는 시편 13편은 다윗의 도피생활과 관련이 있다.

사울의 살해위협을 피해 유랑하는 다윗, 그 기간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소망의 기도를 드린다. 시인의 상황은 절망이지만, 소망으로 기도하고 확신함으로 고난의 상황을 기쁨으로 승화시킨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과도 같은 순간, 
꼭꼭 숨어버린 것 같은 순간, 
이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순간, 
모든 것이 다 무너져내리는 것과 같은 순간에도 한 가지는 남는다.


판도라의 항아리에 ‘희망’이 남았다면, 신앙의 우물에는 ‘기도’가 남았다. 


신앙의 우물에 남은 그 기도를 긷는 이, 절망 속에서도 기쁨의 노래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시편사색>에서는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구절을 해석하면서 ‘시간을 넘어서 계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을 말한다. 시간을 초월해 계신, 시간밖에 계신 그분이 우리의 시간 안에 개입해 들어오신 것을 통해서 구원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원하신 하나님, 시간밖에 계시는 분이 우리 안에 오신 사건이 화육(incanation)이다.

그를 통해서 우리는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영원한 구원의 기쁨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 이것을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라고 고백하는 것이다(이런 심오한 고백을 타 종교를 배척하고 증오하는 데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순간, 

온통 가위눌린 것 같은 삶의 순간에도 기도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타인의 아픔을 죄 때문이라고 정죄하면서 타인의 아픔을 즐기지 말고, 

자신이 겪는 아픔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절망의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어 가는 이들을 볼 때가 있다.

그들의 공통점은 신앙의 우물에 남은 기도를 긷지 않는다는 것이며, 

아픔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음에도 끊임없이 손가락을 타인에게 향하고 있는 이들이다.


신앙의 우물에서 기도를 긷고,

‘내 탓이요!’ 자신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충분히 변화될 수 있다.

시편 13편의 시인이 절망의 상황에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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