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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Jul 22. 2019

시편묵상 17편

시편 17편 - 절실함의 크기만큼 진실해진다


시편사색 

외면하시지 않으시는 주님이시여 위급한 중에서 건져주소서

이제 다시 주님께 간구하오니 손내미사 인자함을 드러내소서(7)


개역성경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2)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8)

     

메시지

주께서도 아시는 일이니 나의 무죄함을 세상에 알려주소서(2).

나는 세상 사람들처럼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주님 뜻대로, 주님 말씀대로 살려고 애씁니다(4).

I’m not trying to get my way in the word’s way.


시편 17편은 ‘다윗의 기도’다.

기도하는 자 다윗은 스스로 의인이라고 할 뿐 아니라, 무죄한 자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다윗은 결점이 많은 사람이다. 충직한 부하를 죽이고 아내를 빼앗았을 뿐 아니라, 수많은 이들을 죽였으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부일처제의 혼인조차도 지키지 못한 인물이다. 그런 다윗이 이렇게 ‘무죄한 자’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다윗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즉각적인 ‘회개’ 때문일까?


과연, 어떤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무죄’를 항변하고 판단하라고 할 수 있는가? 

아무리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쓴다고 할지라도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가? 아무리 애써도 우리는 100% ‘무죄한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안과 밖을 샅샅이 살피고, 아무도 보지 않는 한밤중에 들이닥쳐 심문해도 조금도 거짓이 없음을(메시지) 아시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이런 고백이 가능한 이유는 절실함 때문이다. 절실함의 크기만큼 진실성도 담보되기 마련인 것이다.


요즘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서 ‘칭의론’을 오해하는 이들이 많다.

죄가 없어서 의인이 아니라 죄가 있음에도 ‘의인’이라 인정해 주시는 것이 ‘칭의’의 의미요, 속죄의 의미다. 그런데 아예 대놓고 죄를 범하면서도 회개하면 용서받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 이들은 회개할 기회조차도 상실한 삶을 살아간다.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고 죄악의 길을 걸어가고,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행위를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생각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시편 17편의 기도를 이해하려면, 그가 처한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무고하게 악인들에게 에워쌈을 당한 상황’, 거기서 벗어나고자 온갖 시도를 다했지만, 여전히 그들에게 조롱당하여 깊은 상처를 받은 상황이다. 그 깊은 상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그에게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는 기도다. 이렇게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그는 서서히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간다. 


다윗을 적대하는 자들의 마음은 어떤가?

유진피터슨의 <메시지>에서는 ‘쇠못처럼 강고하고 그들의 말은 허풍스럽다.’고 번역했다. <시편사색>에서는 ‘측은지심이라고는 아예 없는 소인배’라고 번역한다. <개역성경>은 악인의 마음을 ‘기름에 잠겼으며 교만하게 말한다’고 표현한다.


다윗이나 악인이나 100% 의인이거나 100% 악인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편사색>에서는 ‘아예 없는’이라고 함으로써 그들의 악이 얼마나 깊은지를 강조한다. 시편 17편을 통해서 나는 두 가지 교훈을 얻는다.


하나는, 100% 의인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절실한 마음으로 간구하는 기도를 하나님은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100% 완벽한 악인이 아니라면, 그들에게도 구원의 기회는 열려있다는 것이다. 


100% 선인도 100% 악인도 없기 때문이다. 


(2019년 7월 22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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