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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Jul 24. 2019

시편묵상 19편

시편 19편 – 지혜로운 자는 누구인가?


시편사색 

천지가 주의 영광 드러내 보이고 푸른 하늘은 지으신 이의 솜씨 나타내네

낮은 낮에게 크신 주님의 뜻 선포하고 밤은 밤에게 그 깊은 심중 전하네(1,2).


개역성경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7)


메시지

하나님의 지시는 분명하여 알아보기 쉽다.

하나님의 명성은 순금같이 변함없고, 하나님의 결정은 정확하여 한 치의 오차도 없다.

The directions of GOD are plain and easy on the eyes(8).


시편 19편은 

창조시로 시편 중에서 가장 위대한 시의 하나로 평가된다.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신 피조물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다. 

자연의 섭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 성서는 자연의 일부이자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다고 한다.


창세기 1장 28절,

 “자녀들을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또 땅을 정복하라. 또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들과 땅에서 움직이는 온갖 살아있는 것을 다스리라”는 말씀을 인간은 오해했고, 오용했다.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말을 ‘인간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식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 말씀의 의미는 당시 고대 근동에 풍미하던 자연숭배와 노예적인 삶을 강요당하던 히브리민족의 삶과 연결해서 보아야 한다.
짐승만도 못한 삶을 강요당하는 노예적인 삶 속에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고백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신처럼 군림하는 바로(태양신)도 인간이요, 바로에게 짐승만도 못한 삶을 강요당하는 히브리(노예)도 인간이라는 것이다. 인간 위에 인간이 군림한다는 것에 대한 부당성을 밝힌 인권선언이 바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는 태양이나 달이나 온갖 동물들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수단이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단이 목적이 되고, 
인간 위에 군림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인간은 사람됨을 상실하게 된다.


하늘의 운행과 자연의 순리는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속에 담긴 창조주의 뜻을 발견하고 닮아가라고 있는 것이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자연의 신비, 그것은 일부에 불과하다.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니라, 

침묵하는 듯한 자연의 소리 없는 진리가 과학적인 것으로 밝혀진 것보다 그 울림이 훨씬 깊고 크다는 것이다.


그 자연의 신비는 어디에나 펼쳐지지만, 

누구나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지만, 누구나 다 듣고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추상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마음이 깨끗한 자’에게 창조세계의 신비를 볼 수 있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린다.


오늘날, 인류는 자신들의 마지막 보루인 지구공동체를 스스로 위협하고 있다. 

인간 스스로 올무에 걸려버렸다. 


‘자연스러움’을 역행한 결과요, 인과응보다. 

인간이 이렇게 살아오는 동안에도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존재해왔다.

특별히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 없이 그냥 그렇게 존재해왔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겸허해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고, 그들을 통해서 창조주의 뜻을 가늠하며, 그들을 통해 전하는 메시지에 민감해야 한다. 오늘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개체가 멸종되어 지구공동체와 작별하는 동식물이 전하는 말이 무엇인지 들어야 한다. 


천지 만물의 섭리를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을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2019년 7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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