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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Mar 28. 2020

초롱꽃 나물과 어머니

# 어머님이 심으신 초롱꽃 나물을 먹으며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초롱꽃(6월 즈음이면 피어납니다)


봄나물 하면 어떤 나물이 떠오르시나요?


냉이, 달래, 씀바귀, 고들빼기, 쑥, 민들레, 망초....


저는 올봄에 된장 냉잇국을 먹었고, 도다리쑥국도 먹었고, 달래장아찌, 고진감래 씀바귀와 고들빼기 무침, 망초 무침을 먹었습니다. 오늘은 갓 올라온 머위 이파리를 따서 막된장에 쌈으로 먹었습니다.


언 땅을 녹이고 새순을 낸 것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제가 그렇게 해 먹어도 지천으로 자라나니 참으로 고마울 뿐입니다.

 

초식동물이신가 할 정도로 많은 봄나물을 먹었습니다만, 이번 주에 저는 아주 특별한 봄나물을 먹었답니다.

아마, 보통 분들은 "그것도 나물이야?"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초롱꽃


이런 꽃을 피우는 식물의 나물입니다. 


초롱을 닮아 '초롱꽃'입니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 경에 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요즘 제법 실하게 이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제가 가꾸는 '시크릿가든'과 '화분'에는 초롱꽃이 여기저기 많습니다. 뿌리로 번식하기 때문에 거의 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법 큰 것들을 전지가위로 솎아주면 너무 오밀조밀하지 않아서 더 잘 자랍니다. 


이맘때 솎은 것은 부드러워서 나물로 먹기에 좋습니다.

살짝 데쳐서 파를 송송 썰어 넣고 고추장에 참깨와 참기름만 적당히 넣어 조물조물하면, 맛난 '초롱꽃 나물'이 됩니다.



이렇게 제 주변에 초롱꽃이 많은 이유가 있습니다.

어머님 살아생전에 꽃을 좋아하셨고, 자투리 땅만 있어도 그냥 놀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화단 한편에 초롱꽃과 참취 모종을 심으셨지요.

몇 해는 그냥 꽃구경이나 하고 감상만 했는데,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왕성하게 번식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리고 봄나물 할 즈음이면, 초롱꽃 이파리가 제법 실하게 올라왔습니다.

먼 곳에 갈 필요 없이 편안하게, 먹고 싶을 때 가위나 칼을 가지고 가서 뿌리만 남겨두고 줄기를 자르면 다듬을 필요도 없습니다.


식구들이 한 끼 먹을 정도만 하기 때문에 나물 하느라 허리가 아프거나 팔이 아프거나 얼굴 탈 일도 없습니다.

그리고 고맙게도 조금 큰 것들을 잘라주면, 사나흘 뒤에 그들에 가려서 못 자라던 것들이 또 자라난다는 것입니다. 거의 봄의 끝자락까지 연한 초롱꽃 나물을 먹을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봄이면 초롱꽃 나물을 해주시던 어머니는 5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그 이후에는 아들인 제가 이어받아 봄이면 어머님이 가꾸시던 화단에서 자라나는 초롱꽃 나물을 해 먹습니다.

어머님이 계실 때만큼 자주 해 먹지 않으니, 초롱꽃 영역이 더 넓어지는 것이 아니라 좁아집니다. 


참 희한한 일입니다.

어쩌면 저 몰래 어머님이 초롱꽃들이 좋아하는 영양제를 주었을지도 모르겠지요.




산마늘


조금 여유가 생긴 곳에 저는 이런 꽃을 피우는 식물을 심었습니다.

'산마늘'입니다.

'명이나물'이라고도 하고, 삼겹살 구워 먹을 때 종종 식당에서 절군 명이나물이 나옵니다.




그런데 저는 지난해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가 이 나물의 맛을 제대로 알았습니다.

야외 데크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데 친구가 주변에 있던 명이나물 이파리를 따와서는 날로 먹어도 된다고 합니다. 


아, 그 맛은 저린 명이나물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초롱나물 꽃이 빈자리에 명이나물 모종을 심었습니다.

울릉도명이나물 30주를 구입해서 심었더니 하루가 다르게 자라납니다. 자라나는 명이나물에 물을 주면서 이런 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명이나물 새순


내가 죽으면, 아이들이 명이나물이 피어나면 나를 기억하며, 이것을 따서 먹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초롱꽃 나물을 조금 더 뜯었습니다.
어머니 생각을 하며 저녁에 우걱우걱 맛나게 다 먹었습니다. 밥을 먹는데 어머니 생각에 울컥하니, 조만간 어머니 산소에 다녀와야겠습니다.


이맘때면 어머니 무덤가에 머위가 올라오는데, 그것을 뜯으면서 또 어머니 생각하겠네요.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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