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자판의 시대를 넘어 터치의 시대를 살고 있다.
펜에 잉크를 찍어 한 자씩 천천히 써 내려가야만 비로소 완성할 수 있었던 한 문장,
단 한 자만 틀려도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던 편지에 대한 추억.
만년필은 물론이요 펜촉도 맨 처음에 사면 길을 들여야 한다.
서걱서걱 거리던 펜촉이 부드러워지고 손에 맞을 즈음이면 안타깝게도 이내 펜촉은 수명을 다한다.
그리고 또다시 새로운 펜촉 길들이기를 한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필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펜의 속도는 결코 느리지 않다.
어쩌면 사색의 속도만큼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것이며, 엄밀하게 말하자면 사색의 속도는 펜으로 쓴다고 해도 그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펜으로 쓰는 글은 자판보다 깊으며 넓다.
대학 때 처음으로 전동타자기가 등장했다.
전동타자기는 일반 타자기에 비해 수정도 용이했지만 글자체가 유려하고 선명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기 전 컴퓨터로 문서작성이 가능했다.
단 한 번의 입력으로 똑같은 인쇄물을 원하는 만큼 출력할 수 있다는 것은 물론이고, 전체를 다시 편집하지 않아도 오타를 수정할 수 있다는 것은 신기 그 자체였다. 게다가 글자체도 한꺼번에 바꿀 수 있다니.....
지금 스크린 자판에 익숙한 세대에게는 고리타분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처음엔 정말 그랬다.
대학을 졸업할 때에는 200자 원고지에 또박또박 논문을 써서 제출했고, 대학원을 졸업할 때에는 워드 문서로 논문을 써서 제출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인터넷 시대가 열리면서 가상공간에 글을 쓰는 것이 가능해졌으며 그때부터 펜의 시대는 가고 자판의 시대가 온 것이다.
그러나 사실 펜의 시대에서 자판의 시대로 바뀐 것은 그리 오래된 것이 아니다.
터치의 시대지만 아직도 자판의 시대에 조차 입문하지 못한 이들이 많고, 아예 담을 쌓고 지내는 이들이 살아있으니 말이다.
맨 처음엔 자판이 어색했으나 언제부턴가는 펜이 서먹해지기 시작했고,
글도 자판을 두드리지 않으면 써지지 않는, 다중이 읽을 수 있는 가상공간이 아니면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은 상황이 도래했다. 아주 오랫동안...
마치 써진 글은 혼자 읽으면 안 되는 것처럼
그러자 글의 깊이가 사라졌다.
너무 쉽게 말하고, 너무 쉽게 평가하고, 너무 쉽게 후회한다.
펜은 자판보다 깊다.
펜으로 글을 쓰고 다시 옮기는 과정에서 글을 또 한번 생각의 단계를 거치며 다듬어진다.
펜은 느릿느릿, 천천히, 슬로우 라이프를 닮았다.
시대가 너무 빠르다.
자기의 생각도 아닌, 알지도 못하는 것들을 복사해서 붙이면 순식간에 수 백 수 천장의 리포트도 만들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 그것은 자기 자신을 앎에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내가 아는 것처럼 행세하거나 착각할 때 우리는 비인간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천천히 생각의 숨을 고를 수 있는 펜으로 글쓰기는 사람됨을 지켜가겠다는 결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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