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중지'가 필요한 순간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리스 신화 속 프로쿠르테스는 나그네를 자신의 침대에 억지로 눕혀,
침대보다 길면 잘라 죽이고 짧으면 억지로 늘려 죽였다고 합니다.
그의 이름은,
그래서 자기 잣대를 타인에게 들이대는 폭력적 기준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실타래를 가지고 미궁을 빠져나온 테세우스에게 자신이 만든 그 침대 방식 그대로 죽임을 당합니다.
자기 기준의 칼날이, 자기 자신을 찌른 것이지요.
우리가 실패하고 이웃을 상처 입히는 이유 중 하나는,
자기 기준으로 타인을 재고, 판단하고,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그 기준은 대개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이익이 걸린 일 앞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기울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옳다’는 생각에 ‘절대’라는 말을 붙이거나,
남이 한 일에 대해 ‘있을 수 없는’이라 단정하는 순간,
이미 프로쿠르테스의 침대에 누워 있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프로쿠르테스는 아마도 자기 몸에는 꼭 맞는 침대를 가지고 있었겠지요.
그러나 결국 그 침대에서 자신이 죽었으니,
그 침대 역시 완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완벽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의 판단 기준도 언제나 정직하고 정확할 수는 없습니다.
이를 인정할 때, 우리는 조금 더 겸손한 사람, 조금 더 타인의 말을 들을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삶의 길이자, 사람 사이의 지혜로운 거리입니다.
그리고 그 지혜는, 모든 것을 재고 판단하기보다 잠시 멈추어 듣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종종 정의의 이름으로 칼을 들지만,
사실 가장 먼저 찔리는 것은 자기 자신입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니 완벽히 똑같은 침대는 없으며,
자기의 침대는 자기에게는 맞을지언정 아무에게도 맞지 않습니다.
이것을 인정하고 살아간다면, 다름 사람때문에 마음 휘둘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자기의 생각대로 바꾸려는 생각에서도 자유로워집니다.
그러니 평안합니다.
'판단중지'가 필요한 순간을 놓치지 마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