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ON

무두질에 대하여(On Tanning)

진짜 혁명이란 무엇일까

by 김민수

혁명(革命).

그 단어의 첫 글자는 ‘가죽 혁’이다.

개혁.

그 단어의 첫 글자도 ‘가죽 혁’이다.


말 그대로 혁명이나 개혁은

‘가죽을 벗긴다’는 뜻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나는 언제부턴가,

이 ‘가죽을 벗긴다’는 표현보다,

그 가죽을 벗긴 후에 진행되는 ‘무두질’에 더 마음이 간다.


무두질은 가죽에서 기름기를 빼고,

불순물을 제거하고, 단단한 것을 부드럽게 하는 작업이다.

핏기 가시지 않은 생가죽은 단단하고 거칠다.

그것을 두들기고,

문지르고, 말리고, 다시 두들기고,

기름을 빼내는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부드러운 가죽이 된다.

가죽을 벗기는 일은 비교적 쉽다.

칼날 하나면 된다.

하지만 무두질은 시간과 인내와 기술이 요구된다.

날것을 사람의 쓸모에 적합하게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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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진짜 혁명은 ‘벗기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진짜 혁명은 벗긴 뒤, 그것을 다듬는 ‘무두질’의 시간이다.

진짜 개혁도 ‘벗기는 일’에 그치지 않는다.

진짜 개혁은 벗긴 뒤, 그것을 다듬는 ‘무두질’의 시간이다.

격렬한 외침 이후 찾아오는 고요한 실천의 시간.

제도를 갈아엎는 일보다,

그 속에 살 사람들의 삶과 습관, 감정과 언어를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

그것이야말로 진짜 ‘혁(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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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도 마찬가지다.

회개의 순간은 비교적 선명하다.

말로 고백하고 눈물 흘리며 죄의 껍질을 벗겨낸다.

그러나 그 후의 삶,

곧 매일의 무두질이 없다면, 그런 회개는 마약에 불과하다.

진정한 회개에 이르려면,

자기의 깊은 죄를 돌아보며 기름진 죄를 빼내고,

오래 묵은 자아의 굳은살을 문질러 부드럽게 하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


날마다 자신을 두드려 부드럽고 순한 마음을 갖게 하는 그 과정.

십자가의 의미도 무두질과 닮아 있다고 본다.

겉을 벗기고 나서야 비로소 드러나는 내면.

그것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부드럽게 만들며,

어떻게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이끄는 작업,

그것이 바로 삶이요, 신앙이요, 나 자신의 혁명의 완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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