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하는 꽃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말들
봄날이 가고 있다.
지난 계절의 추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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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바람이 지나간 어느 길목에서는 벌써 꽃이 피었다 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햇살이 잘 드는 곳에서는 계절을 앞질러 핀 꽃들이 있다.
한겨울의 끝자락에서도
비파나무에 노란 꽃망울이 맺히고,
수선화가 고개를 들고,
냉이꽃이 바위 틈에서 작은 봄을 예고한다.
모진 바람에도 피어난 꽃들은,
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위대한 일이다.
그러나 피어난 꽃은 반드시 진다.
우리는 꽃이 지는 것을 아쉬워한다.
그러나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는 것을 안다면,
그 아쉬움이 슬픔이 될 필요는 없다.
낙화의 아픔을 겪지 않고는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다는 것.
그것이 떨어지는 꽃들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가장 단단한 고언(苦言)일 것이다.
말로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몸으로 겪고 흘린 침묵의 언어, 삶의 언어.
슬픔을 말하지 않고도 슬픔을 알게 하는 방식.
그래서 더 깊은 말, 그래서 더 오래 남는 말.
설핀 꽃은 떨어져도 열매를 남기지 않는다.
문득, 세상에 흘러넘치는 설익은 말들을 떠올린다.
다 말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말이 무르익지 않은 채 뱉어질 때, 말은 상처가 되기도 한다.
깊이 묵힌 말만이 누군가에게 열매가 된다.
온전히 익은 말만 하겠다고 다짐했더니, 평생 말 한 줄 꺼내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 침묵 속에서야 비로소 말이 말다워질 수도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은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때'는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날은 도둑같이 온다”는 말처럼, 우리는 그 순간을 미리 알 수 없지만,
오늘이 그날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지혜일 것이다.
Carpe Diem. 오늘을 잡아라.
떨어진 꽃은 울지 않는다.
그 순간에도, 더 환하게 웃는다.
어쩌면 웃는다는 것 자체가 자기 운명을 다 알아서가 아니라,
그저 그 순간을 온전히 살기로 결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진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는 꽃처럼,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향기를 남기는 존재처럼.
그래서 꽃은 피는 순간보다 지는 순간이 더 아름답다.
더 이상 자기 자신을 붙들려 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제 자리를 내려놓기 때문이다.
그 떨어진 꽃을 보며, 우리도 그렇게 아름답게 저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