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책이 그 사람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단지 활자를 따라가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방향을 틀어놓는 힘을 가진 만남이다.
책은 길이고,
저자는 길잡이이며,
독자는 걷는 이다.
걷는 속도는 빠르지 않아도 좋다.
오히려 좋은 독서는 천천히, 느릿느릿 걷는 길 위에서 이뤄진다.
요즘 사람들은 책을 잘 읽지 않는다고 한다.
글을 읽어도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스크롤에 익숙해진 눈은 중요한 문장들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며
문장을 건너뛰고, 문장에 담긴 깊은 의미를 깊게 파고들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책 읽는 일은 지루한 일이 되고 만다.
그래서 지식의 총량은 늘었지만, 지혜의 깊이는 얕아졌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사람을 읽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종이책이 좋다.
작년에 전자책을 구독한 적이 있었다.
처음엔 편리했다.
언제 어디서나 가볍게 읽을 수 있었고, 밤에도 조명이 필요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많이 읽히지 않았다.
화면을 넘기는 손끝은 분주했지만, 마음은 오래 머물지 못했다.
종이책은 다르다.
책장을 넘기고,
마음에 와닿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밑줄이 삐뚤빼뚤 할 때도 있고,
내 생각을 더한 작은 메모들에 깨끗하던 책이 지저분해진다.
하지만,
인쇄된 이후 독자를 만나,
처음으로 다시 펼쳐진 그 페이지에 어떤 흔적이 남는다는 것은 책의 기쁨이 아닐까?
책은 물건이지만, 사람 같고, 기억의 저장소 같고,
때론 오래된 벗처럼 곁에 머문다.
좋은 책은 속삭인다.
조용히, 그러나 깊게.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나는 책을 펼친다.
좋은 책이란 무엇일까.
한 문장을 읽고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만드는 책,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내가 다른 책,
그 문장 하나가 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책.
그런 책은 시간의 검증을 받는다.
젊었을 땐 이해하지 못했지만, 어느 날 문득 가슴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다면
그 책은 이미 좋은 책이다.
모든 책을 곁에 둘 필요는 없다.
어떤 책은 스쳐 지나가듯 읽어도 되고,
어떤 책은 아예 거들떠 보지 않아도 된다.
책을 고르는 일은 삶의 동반자를 고르는 일처럼 중요한 일이다.
아니, 자기를 고르는 일이다.
읽는 책이 바로 그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떤 생각과 함께할 것인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가.
책은, 그렇게 나의 삶에 말을 걸어오고, 그렇게 살아가게 하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