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채움이다
말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간다.
말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말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못할 것같은 불안함을 느끼게 하는 세상이다.
그래서 나도 숙성되지않은 단어의 파편들을 끊임없이 내어놓는다.
하지만,
깊은 말, 성숙한 말, 오래 남는 말은 언제나 침묵 속에서 탄생한다.
침묵은 단지 소리가 없는 상태가 아니다.
그것은 생각이 머무는 장소이며, 존재가 들리는 방식이다.
침묵은 비어 있음이 아니라 채움이다.
음악이 쉼표로 완성되고,
단어와 단어 사이의 배열이 시가 되고,
그림이 여백으로 숨 쉬듯,
우리의 삶도 침묵 속에서 비로소 조율된다.
시인에게 침묵은 단어 이전의 심장박동이고,
작곡가에게 침묵은 음표보다 앞선 진동이다.
진실한 말은 침묵 속에서 잉태되고,
침묵을 통과한 말만이 상대의 마음에 도달한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순간일수록, 침묵하라.
그러면, 그 말은 더 큰 힘을 가질 것이다.
침묵은 때로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달한다.
슬픔 앞에서, 고통 앞에서, 사랑 앞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말보다 침묵을 선택한다.
그것은 무능함이 아니라 깊은 공감의 표현이며, 함께 머무는 태도다.
사랑하는 이와의 침묵은 불편하지 않고, 오히려 충만하다.
말없이 함께 있는 순간, 우리는 말보다 더 많은 것을 나눈다.
하지만 침묵은 언제나 미덕이 되지는 않는다.
침묵은 때로 책임 회피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불의 앞에서 침묵은 동조에 가깝고,
침묵을 선택한 무수한 순간들이 세상을 뒤틀기도 했다.
그러므로 침묵해야 할 때와, 말해야 할 때를 구분할 줄 아는 분별이 필요하다.
그러나 말하더라도, 너무 쉽게 말해서는 안 된다.
"예"와 "아니오"조차 성급히 말하면, 그 말은 이내 공허해진다.
진실은 언제나 조용히 익는다.
말은 침묵 위에 지어진 다리처럼, 먼저 고요 속에서 탄생해야 한다.
쉽게 뱉은 말이 상처가 되고, 흘러가는 말이 누군가의 삶을 흔든다.
말의 책임을 아는 이라면, 반드시 침묵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진정한 침묵은 단순히 말의 부재가 아니다.
침묵하되, 경청하고 —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
세미하게 들려주는 신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경지로 나아갈 때,
비로소 우리는 침묵의 깊은 언어와 만나게 된다.
결국 침묵은 말을 위한 침묵이며, 존재를 위한 침묵이다.
우리는 그 침묵 속에서 가장 나다운 목소리를 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