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떠나간 사람만이 떠난 곳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된다.
자기의 일상을 살아가는 곳이 얼마나 소중한 곳인지 알게 된다는 것,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첫 단계가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여행이 사람의 마음을 넓고 깊게 만든다는 말은 진실이다.
내게 낯설게 다가오는 것이 그들에게는 일상이며, 혹은 그들에게 낯설게 보이는 것은 내게 일상이다.
여행지에서 오랫동안 기억되는 풍경들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래전 보았던 것 같은 풍경이다. 마치 내 유년의 시절을 보는 듯한 풍경에 우리는 사로잡히며 안도하는 것이다.
여기선 거기가 그리운 거야.
그리고
거기선 여기가 그리운 거야.
그래서
우린 불쑥 여행을 떠나곤 하는 거지.
떠난 후
여기가 얼마나 소중한 곳이었는지 비로소 아는 거야.
그래서
여행이 필요한 거지.
그곳도 이곳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본다.
봄이 한창 무르익은 5월의 덴마크 코펜하겐의 외곽도로를 타고 가는 중에 숲에 무리 지어 있는 꽃들을 보았다.
그곳에서 바람꽃을 만날 줄이야.
나라마다 사람이 조금 다르듯이 꽃도 조금씩은 달랐지만,
물망초, 바람꽃, 수선화, 광대나물, 현호색 봄에 피어나는 꽃들이 내가 사는 조국의 숲과 다르지 않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가을꽃들도....
일상에서 여행을 떠나고 싶고, 여행을 떠나면 일상이 그립다.
그러면서도 여행이 늘 낭만인 것은 인간은 끊임없이 걸어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직립보행이 인간의 역사를 형성하는 디딤돌이 된 것처럼, 여행은 개인의 삶을 형성하는 디딤돌이 되는 것이다.
너무 낯설지 않은 풍경을 보면서 나는 떠난 곳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움이 사무칠 즈음이면 여행도 서서히 내리막길에 서있음을 알게 된다. 그때부터 얼마 남지 않은 여행길이 다시 소중해지는 것이다.
여기선 거기가, 거기선 여기가 그리운 것이 삶이라는 여행길이다.
그러니 여기든 거기든 다 아름답게 가꿔갈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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