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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Jan 09. 2016

나무의 향이 가장 깊은 곳

#24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나무의 옹이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 1915-1980)의 <밝은 방>에 푼크툼(punctum)이라는 라틴어가 나온다.

이것은 뾰족한 도구에 의해 상처 난 상흔 혹은 화살촉처럼 아주 작은 것이 어느 부위를 찔러 상처를 입히는 아픔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와 상대적인 개념으로 스투디움(studium)은 널리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해석이다.


그런 점에서 스투디움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일반적인 해석이라면, 푼크툼은 일반적인 해석과는 상관없는 개인적인 해석으로 보는 이의 가슴과 머리를 화살로 찌르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으로 공유되는 아픔의 차원(스투디움)은 개인의 아픔(푼크툼)을 위로할 수 없다. 개인적인 아픔 혹은 상처 또는 고통의 무게는 저마다 가장 무겁기 때문이다.


광릉수목원


나무의 고향인 숲을 걷다 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나무의 옹이'를 볼 수 있다.

'푼크툼', 아주 작은 화살촉 같은 아픔이 나무를 찌르면 나무는 상처에 자신이 더 이상 노출되지 않도록 옹이를 만든다.


나뭇가지가 꺾인다거나 혹은 병충해가 침입을 한다거나 하는 경우에 옹이가 생긴다.

만일 옹이를 만들어낼 수 없다면 나무는 작은 상처에도 서서히 죽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무의 옹이는 나무의 상흔이다.
상흔은 고통의 흔적이고, 아픔이 흔적이다.
나무의 옹이


옹이의 모양은 제각기 다양하다.

상처도 다르고 그것을 치유하는 방식도 나무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시는가?

나무의 가장 단단한 부분은?

나무의 향이 가장 깊이 배어 있는 부분은?


대관령 삼양목장 - 나무 한 그루에는 수많은 옹이가 있다.


나무의 향기 가장 깊은 곳과 나무 조직 중에서 가장 단단한 부분은 바로 옹이다.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은 없다.

이것을 '스투디움'의 관점으로 다가가면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하는 훈계 정도의 역할을 할 뿐이다.

오히려 상처로 아픈 이들을 더 아프게 할 뿐이다.


우리는 당신의 아픔을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것은 당신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더욱더 단단하고 향기 깊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는 것은 안다.

아니, '안다'가 아니라 '그러길 바란다'가 맞는 말이겠다.


제주도 조천 만세동산의 팽나무


옹이는 '텅 빈 공간'이다.

'rasa'의 현실이다. 여백의 미요, 채우고 비우는 과정에 대한 상징이다.




아픔을 통해서 우리는 비움을 배운다.

다 비우고 내려놓았을 때에야 비로소 아픔은 채워진다.

그 빈 곳에 아픔을 통해 얻은 삶의 향기를 채우는 것이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장노출



아주 작고 뾰족한 화살촉 같은 아픔이라서 오로지 자신 밖에는 느낄 수 없는 상흔 앞에서 힘든 이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잘 이겨내셔서 당신의 삶을 단단하게 하고 삶의 향기를  더욱더 깊게 하시라고.



많이 아파본 사람, 깊이 아파본 사람만이 위로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쉽게 말하지 않는다.

아픔 속에서 힘겨워하는 이들을 그저 묵묵히 지켜볼 뿐이다.

그러니 결코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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