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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Jan 11. 2016

소유하는 삶, 존재하는 삶

#25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인사동 - 니콘FM2 / 캔트미어 ISO 100


마음 같아서 수동 카메라로 흑백 필름을 사용해서 사진을 담고 싶지만, 기동성의 문제와 더불어 디지털이 주는 편리함에 길들여져서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는 아날로그가 주는 그 무언가를 놓지 못한다.


36장짜리 흑백 필름 한 통을 감아놓고는 때론 한 달은 기본이고  두세 달에 거쳐서야 겨우 36장을 찍을 수 있다.

게다가 필름 한 통을 현상하러 발품을 팔기는 뭐해서 두어 통 만들어보려면 더 많은 시간이 든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의존하게 되고, 그것 없이는 살 수 없게 된다.


광화문 - 뒷모습- 니콘FM2 / 캔트미어 ISO 100


이 지적은 비단 사진에 해당되는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없어도 충분히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이젠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단적인 예를 들자면,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환경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사실 우리는 얼마 전 까지만 해도 스마트폰이 없이도 잘 살았으며, 와이파이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인터넷 환경이었다. 그런데, 이제 우리는 그것 없이는 살 수 없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살아간다. 아니, 착각이 아니라 현실이 되어버렸다.


인사동- 뒷모습- 니콘FM2 / 캔트미어 ISO 100


그 현실은 우리에게 의무를 부여했고,

우리는 그것들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을 지출하기 위해 기꺼이 더 많이 벌고자 한다.


소유하는 삶은 끊임없이 인간에게 의무를 강요하고
인간은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인다.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우리는 강요되는 많은 의무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초롱꽃의 씨앗주머니 - 니콘FM2 / 캔트미어 ISO 100


존재의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면 많은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그러나 그 불편함만큼의 자유와 불편함 만큼의 소유하기 위한 의무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소유하는 삶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해야 할 이유이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소유하는 삶과 존재하는 삶에 대해 아주 적절하게 통찰했으며,

슈마허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맘몬(자본)의 사회에서 그들의 노예가 아니라 주체적인 존재하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들뿐 아니라 수없이 많은 이들이 '슬로우 라이프'를 주창하며 소유하는 삶을 향해 질주하는 현실에 제동을 걸어보고자 했으나 현실은 소유하는 삶을 위해 전력 질주하도록 우리를 다그친다.


전주에서 - 디지털 흑백이미지로 담은 사진


소유의 시대에 존재하는 삶을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존재하는 삶이 쉬운 일이었더라면, 누구인들 존재하는 삶을 추구하지 않았겠는가?

쉽지 않아 아름다운 일이고, 쉽지 않아 노력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존재하는 삶이다.




소유하는 삶과 존재하는 삶의 적정선은 어딜까?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소유하는 삶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해 최소한의 의문을 품을 수 있다면 존재하는 삶으로의 가능성, 그 길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거여동재개발지구에서- 흑백디지털 이지미로 담은 사진



흑백사진은 컬러를 소유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흑백은 더 많은 컬러를 상상하게 만들었다.

소유하지 않음으로 존재하는 방식을 아날로그 흑백사진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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