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겨울에만 볼 수 있는 풍광이 있다.
사실, '겨울에만'이라는 의미가 내포하는 상징은 참으로 깊다.
'겨울에만'은 봄, 여름, 가을도 예외가 없으므로 그렇다.
그리고 거기엔 '오늘만'도 포함이 되며, 어쩌면 나는 지금 여기서 찰나의 순간만 나는 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사계절을 다 좋아하지만, 겨울과는 덜 친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춥고 배고픈 것이 싫었던 어린 시절과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더 구구절절 들어가면 소위 '노땅'들의 되풀이되는 과거사이므로 여기까지다.
각설하자면, 가난한 이들에게 겨울은 가장 혹독한 계절 중 하나이기 때문에 덜 친하다.
하얀 눈이 내리는 날, 작은 눈꽃송이 하나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단 하나의 작품으로 다가온다.
허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단 하나의 작품이다.
겨울이 깊은데도 낙산홍의 이파리는 단풍만 들었을 뿐, 나뭇잎을 떨구지는 못했다.
무슨 미련이 남아 잎을 떨구지 못하는가 싶었는데, 미련이 아니라 눈이 내리면 자신이 그들의 화폭이 되어주고자 하는 마음이었는가 보다.
개인적으로 아주 오래 기억에 남은 장면이다.
연약해 보이는 수선화가 겨울에 핀다는 것도 신비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꽃이 제주의 칼바람에도 불구하고 피어난다는 것은 신비 중의 신비였다. 그런데 눈까지 내렸다. 그러나 이내 눈이 녹으면 그들은 다시 상처 입은 얼굴로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상처 입은 얼굴은 부끄러운 얼굴이 아니었다.
그 상처로 인해 그들은 더욱 아름다운 꽃이 되었다.
서울의 노지에서 수선화는 봄에 피어난다.
물론, 봄에 피어나는 수선화도 예쁘다. 그러나 나는 겨울에 피어나는 수선화가 더 예쁘다.
겨울이라 더 예쁜 것이다.
겨울이면 바위나 고목의 옷이 되어 초록의 빛을 더하는 이끼가 있다.
땅의 옷, 그들은 꽃도 아닌 삭을 피운다.
실처럼 가는 줄기에 피어난 삭, 겨울이면 이끼의 삭에 맺힌 이슬방울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한다.
햇살이 잠시 비추면 녹았다가 이내 그늘이 지면 이슬 얼음이 된다.
이런 장면은 겨울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예쁜 풍광이다.
물론,
그 예쁜 풍광을 보려면 몸을 활짝 펴고 겨울 들판으로 나서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우리는 오늘을 산다.
오늘은 어느 누군가가 이루지 못한 소원의 날이기도 하다.
그러니 소중하지 않은 날이 어디 있겠으며, 예쁘지 않은 날 어디 있겠는가?
자기의 날만 소중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날도 소중한 것이니,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의 소중한 날을 희생시킨다면 인간에 대한 예의가 극히 부족한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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