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강으로 치자면 골목길은 큰길 뒤에 숨어있는 실개천 같은 것이다.
수많은 실개천이 모이고 모여 강을 이루는 것처럼, 수없이 작은 골목길들이 모여 큰길을 만든다.
실개천을 따라 아기자기한 생명들이 자라나듯이, 골목길을 걷다 보면 큰길에서는 볼 수 없는 아기자기한 삶의 편린들을 볼 수 있다.
아기자기한 삶의 현실은 사실 아름답지만은 않다.
오히려 가슴 저린 현실이다.
그러나 삶의 속살은 동시에 끝없는 희망, 그럼에도 불구하고이므로 아름답다.
그래서 사람이고, 그곳에 사람이 사는 것이구나 싶어 가슴 저린 흔적조차도 가슴에 품게 된다.
골목길을 걷다 보면 지척에서 그들의 삶의 단편을 보게 된다.
큰길이 화장한 얼굴이라면 골목길은 맨 얼굴이다. 그런데 그 맨 얼굴은 햇살에 그을린 어머니의 얼굴 같다.
큰길은 빠르지만, 골목길은 느리다.
큰길은 빨리빨리의 현실을 강요하지만, 골목길에서는 그 누구라도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골목길은 '슬로우 라이프'에 가깝다. 단지, 오늘날 대한민국에서는 자발적 청빈이라기보다는 강제성에 의해 강요된 측면이 있다는 점을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얼마나 정겨운 소리였는가?
아이들의 깔깔거리는 소리에 때론 "애끼, 이놈들 시끄럽다. 다른 곳에 가서 놀아라!"호통 치는 소리가 골목길에 쩌렁거리며 좁은 골목길을 달리는 아이들의 등줄기를 따라잡는 것도 얼마나 정겨운가?
골목길엔 햇살도 오래 머물지 못한다.
좁은 골목길만큼 '한 줌 햇살'이다. 그러나 그 햇살에 마침내 피어나는 생명이 있다.
그곳에 사는 이들의 삶을 닮았다. 그리하여 '질경이'가 아니겠는가?
밟혀도 밟혀도 죽지 않는 저 질긴 생명, 아예 태어날 때부터 짓밟혀도 포기하지 않을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생명, 그것이 질경이의 생명이고 사람의 생명이 아니겠는가?
나는 큰길보다 골목길 걷는 것을 좋아한다.
큰길에서는 볼 수 없는 삶의 흔적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봄으로 아프지만, 그 아픔을 통해서 나는 사람살이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큰길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다.
큰길이었더라면 진작 철거되거나 가림막으로 가려졌겠지만, 골목길엔 큰길에서 볼 수 없는 것들도 오랫동안 존재한다. 어쩌면 이런 점들 때문에 사진가들은 골목길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볼 수 없는 그 무엇이 골목길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으 말이다.
골목길을 걸어본 적이 언제인지 가물거린다면,
겨울이 가기 전에 골목길을 한번 걸어보자.
그곳에서 꼭꼭 숨겨진 보물 같은 추억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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