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식이 기도가 되다

욥기 3장 탄식은 하나님과 말하는 것이다

by 김민수


침묵은 7일간 이어졌다.

세 친구는 말이 없었고, 욥도 입을 열지 않았다.

말보다 함께 있음이 위로가 되던 시간.

존재하는 그 침묵은 고통을 향한 인간적인 최대의 존중이었고,

말하지 않음으로 드리는 기도에 가까웠다.


그러나 침묵은 끝났다.

고통은 더 이상 눌려 있지 못했다.

욥은 입을 열고, 말로 고통을 쏟아낸다.

그의 첫 마디는 놀랍게도 자기 생일을 저주하는 말이었다.

“내가 태어난 날이 없어져야 했어. 사내아이를 가졌다고 한 그 밤도.

그날이 어두워지고, 위에 계신 하나님이 그날을 찾지 않으셔야 했어!

빛이 그날을 비추지 않았어야 했어!”(3:3–4)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삶, 자신의 시작, 자신의 존재의 뿌리를 부정할 뿐이다.

욥은 자신이 태어난 날을,

그 날을 기뻐했던 가족의 환호를,

자신을 잉태한 어머니의 몸조차 모두 지워버리고 싶다고 말한다.

이 탄식은 단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내 존재가 실수였던 것이 아닐까?”라는 실존적 질문이다.


그는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기를 바란다.

이것은 자살 충동이 아니라, 존재 철회의 언어다.


욥은 지금

세상에 대해 저주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의미를 잃어버린 것같은 삶에 대해 질문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탄식함으로써 자신을 보듬고,

탄식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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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은 묻는다.

왜 태어나게 하셨는가?

왜 젖을 빨게 하셨는가?

왜 지금도 나를 죽이지 않으시는가?


“자기 길이 감추어져 있고,

하나님이 사방을 막아 버린 사람에게 왜 빛을 주시는가?”(3:23)

그의 말은 인간의 고통 앞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재고하게 만드는 질문이다.


신은 왜 고통 받는 자에게 삶을 계속 허락하시는가?

이러한 질문 속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고, 자신의 생일을 저주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지속하겠다는 결단이다.


월터 브루그만(Walter Brueggemann,1933~)은

“탄식은 하나님께 말하는 것이며,

신이 여전히 자신을 지켜볼 것이라는 전제가 남아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라고 말했다.1)

그러므로 욥의 탄식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의 탄식의 언어이며,

그는 탄식의 언어로 하나님께 말을 건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욥의 탄식은 곧 기도다.


욥의 탄식은 하나님을 떠난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에게 가까이 가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그는 삶의 부재를 원했지만,

하나님이 부재하시는 것과도 같은 침묵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에게 말을 건다.

그는 삶의 부재를 원했지만, 하나님과 이어져 있으므로 살아갈 것이다.

그는 침묵하지 않았다.

우리는 욥을 통해 고통 중에 하나님께 말을 걸 수 있는 믿음을 배운다.


욥기 3장은

더 이상 참지 못할 고통에 처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말로 고통을 진술하는 장이다.

그리고 이 탄식은 이후의 논쟁과 변론, 신과의 대화로 나아가는 믿음의 역설적인 탄생이다.

욥은 하나님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존재의 시작을 부정했다.

그의 입에서 터진 탄식은 하나님을 향한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침묵의 끝에서 나온 탄식, 그것은 욥의 첫 번째 기도였다.


시편 13편은 탄식이 어떻게 기도가 되는지 보여준다.

언제까지, 오 여호와여, 나를 잊으시렵니까?

계속, 그리하시렵니까?

언제까지 주님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시렵니까?(시편 13:1)


그렇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은 탄식이 되고, 탄식은 기도가 된다.

탄식은 푸념이 아니라 기도다.

“평탄할 때에는

어린이나 약한 이도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러나 괴로울 때에는

용맹하고 끈질긴 사람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2)


참고문헌(주):

[1] 논문 『The Costly Loss of Lament:탄식의 값비싼 손실』, 1986. PP.57-71

“Lament is a form of speech grounded in trust. It presumes that God still listens.”

(탄식은 신뢰에 기반한 언어 형식이다. 그것은 하나님이 여전히 듣고 계심을 전제로 한다.)

[2]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365일의 잠언』, 가톨릭출판사,2020,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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