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10장 기도는 형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욥은 더 이상 이론이나 신학적 논쟁에 머물지 않는다.
이제 그는 하나님을 향해 직접 입을 연다.
그의 입술은 정중하지 않지만, 그 말은 심연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진실된 말이다.
"나 스스로도 내 삶이 아주 싫습니다.
내 신세를 한탄합니다.
가슴이 쓰라려 말씀드리겠습니다."(10:1)
욥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삶을 쏟아놓는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그의 기도는 정중하지 않고, 질문으로 가득 차 있으며,
탄식과 항의 사이를 오간다.
그의 기도는 대화체에 가깝다.
그는 하나님께 묻는다.
"주님에게는 좋으신가요?
이처럼 억누르시고 주님의 손으로 애써 만드신 것을 마다하시면서,
악인들의 의논에는 빛을 비춰 주시는 것이요" (10:3)
기도는 더 불경스러움을 향해 나아가는듯하다.
"육신일 뿐인 사람의 눈이 주님에게 있는 것입니까?
사람처럼 주님이 보십니까?
사람의 날수 같은 것이 주님의 날수인가요?
주님의 햇수가 인간의 날수와 같은가요?" (10:4–5)
욥은 하나님께 인간처럼 따지고 있다.
그러나 그 말 속엔,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과 끝까지 연결되고자 하는 의지가 들어 있다.
월터 브루그만은 이렇게 말한다.
“마침내 시인이 와서 격노와 분노를 토해 낸다.
격노와 분노는 산문체의 발화를 용납하지 않는다.
분노는 체념하지 않는다.
분노는 주장하고 희망하는 행위다."1)
기도는 미사여구의 말만을 드리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무례한 말이라도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면
그것이 진짜 신앙의 언어다.
욥은 자기 목소리가 미치는 한도까지 하나님을 비난한다.
게다가 하나님은 거짓말쟁이라고까지 주장한다(9:20-22).
욥은 하나님이 부재한다고 하지는 않는다.
만일, 하나님의 부재를 주장하는 순간, 관계는 단절되고,
단절된 관계는 결국 침묵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욥을 몰아갈 것이다.
그러므로 욥의 질문은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구구절절한 질문이다.
욥은 어떤 내용으로든 대답이 오길 간절히 바란다.
공허한 독백보다는 아무리 고약해도 대화가 더 좋기 때문이다.2)
마침내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를 정성껏 지으신 분임을 고백한다.
"기억해 주십시오.
주님이 나를 진흙처럼 만드셨음을요.
그런데 나를 흙으로 돌아가게 하시려 하십니다."(10:9)
"주님이 가죽과 살로 나를 입히시고,
뼈와 힘줄로 나를 짜 맞추셨습니다.
생명과 한결같은 사랑을 주님이 나에게 베풀어 주셨고,
주님이 돌아봐 주신 덕분에 내 숨결이 보존되었습니다."(10:11,12)
욥은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과 돌봄을 기억한다.
그러면서 묻는다.
“그토록 사랑하신 나를 왜 이렇게 무너지게 하십니까?”
이 말은 항의가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매달리는, 눈물 섞인 질문이다.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을 향한 질문은 신앙의 파괴가 아니라,
관계를 이어가려는 가장 정직한 형식이다.”3)
욥은 마지막에 이렇게 말한다.
"그러니 그만하십시오!
나를 내버려두십시오!
조금이라도 기분 좋게 보내고 싶습니다." (10:20)
죽음을 구하지 않지만,
이 고통에서 잠시라도 벗어나고 싶다는 절규가 사무친다.
욥은 하나님에 대한 예의를 버렸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신뢰는 버리지 않았다.
그의 기도는 무례하지만 진실했고,
그의 질문은 항변이었지만 믿음의 고백이었다.
그러므로 기도는 형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께 등을 돌리지 않는 영혼의 부르짖음이 있을 때 완성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대화는 때로 다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다툼조차 관계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살다보면 기도조차도 사치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한다는 것만으로 여전히 하나님을 향해 서 있는 것이다.
욥처럼, 여전히 ‘하나님께’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
[1] 월터 브루그만, 『마침내 시인이 온다』, 김순현 옮김, 성서유니온, 2018, p.82.
[2] 위의 책, pp.93,94 발췌 요약
[3] Henri Nouwen, 『Spiritual Direction: Wisdom for the Long Walk of Faith/영적 지도: 신앙의 긴 여정을 위한 지혜』의 전반적인 주제이다. 다른 저서를 통해서도 신앙의 여정에서 의심과 질문이 단절이 아닌,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로 나아가는 길임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