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24장 -
욥은 더 이상 자신의 고통만을 말하지 않는다.
그의 질문은 한 개인의 탄식을 넘어, 세상을 향한 고발로 확장된다.
왜 악인이 득세하는가?
왜 정의는 침묵하고, 하나님의 날은 보이지 않는가?
“샷다이(전능하신 분)께서
왜 때를 정해 두시지 않았는가?
그분을 아는 사람들이 그분의 날을 보지 못했다네.”(24:1)
욥이 직면한 현실은, 그가 배워온 신앙의 틀과 충돌한다.
히브리 전통은 분명히 가르친다.
하나님은 가난한 자, 억눌린 자의 편이시며
악한 자의 교만은 언젠가 꺾이리라.
그러나 지금 욥이 마주하는 세상은 전혀 다르다.
하나님께서 돌보셔야 할 자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 있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아무 일 없이 살아간다.
“사람들이 경계를 옮겼다네.
짐승 떼를 훔쳐서 놓아 길렀다네.
부모 없는 아이들의 나귀를 끌어가고,
남편 여읜 여자의 소를 볼모 잡는다네.”(24:2–3)
악인들은 탐욕과 폭력으로 약한 자들의 삶을 짓밟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하신다.
욥은 말한다.
하나님은 허튼소리라고 마음 쓰지 않으신다(24:12).
그의 절망은 단순히 아픔 때문이 아니다.
정의로우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이토록 불의한 세상이 가능한가?
그 질문이 욥을 사로잡고 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한 가지 역설을 마주하게 된다.
욥은 지금 '버림받고 고통당하는 자'의 전형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그는 당대의 부자였고, 영향력 있는 자였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의 질문은 더 깊은 울림을 갖는다.
이 지점에서 리처드 로어의 통찰은 본문의 의미를 밝혀 준다.
“가난한 사람이란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약함과 의존, 굴욕의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이다. 이는 수단의 부족, 즉 원하는 바를 이룰 능력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결핍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돈의 부족일 수도 있고, 관계나 영향력, 권력, 과학, 기술, 명예로운 출신, 신체적 강건함, 지적 능력, 자유, 인간 존엄성의 부족일 수도 있다. 이들 중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그것은 개인적 가난의 한 형태다. 세상과 타인 앞에서 자신을 열등하거나 불충분하다고 느끼는 상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사람들을 돌보신다고 약속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분을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외에 다른 의지처가 없기 때문이다.”1)
욥은 지금 바로 이런 의미에서 가난하다.
모든 것을 가졌던 자가 모든 것을 잃은 자가 되었고,
그는 철저히 무력한 존재로서 하나님께 묻는다.
“왜 이토록 불의한 세상이 지속됩니까?”
이 질문은 단지 개인적 원망이나 분노의 외침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침묵과 저항, 인내와 고발이 교차하는 신앙적 이중성의 자리다.
철학자 김용규는 이와 같은 상황에 대해 말한다.
죄 없는 자가 받는 고통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부조리에 대해
아브라함처럼 침묵하고 인내해야 하는지,
아니면 욥처럼 외치며 저항해야 하는지를 묻고,
이렇게 답한다.
“우리는 침묵하고 인내하면서, 외치며 저항해야 한다.”
그는 이중적인 태도를 설명하며,
죄 없는 자가 받는 고통으로 드러나는 하나님의 부조리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는 침묵하고 인내하되,
사람들 앞에서는 외치며 저항해야 한다”고 말한다.2)
욥이 바로 그 자리에 서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침묵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외친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넘어서, 사회와 세상의 구조적 악을 고발한다.
그는 악인들이
아침부터 약한 자를 잡고,
밤에는 강도질을 하며,
고아와 과부를 억압하고도
무사히 살아가는 현실을 고발한다. (24:9–17 요약)
욥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다.
악인들이 평안하게 살며 죽을 때까지 번영을 누리는 이 세상 속에서
자신은 정의와 진실로 살았음에도 고통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끝까지 하나님을 놓지 않는다.
그의 확신은 무너졌지만,
그 사이에 붙잡은 마지막 신뢰가 있다.
“그런데 그분이 강한 사람들을 힘으로 덮치실 것이네.
그분이 일어서시면 그들은 목숨을 보장받지 못한다네.
그들은 조금 높아졌다가 없어질 것이고,
낮아져서 남들처럼 될 것이네.
더 쭈그러들었다가 맨 위의 이삭처럼 시들어 버릴 것이네.”(24:22,24)
이것은 믿음이라기보다,
믿음이 무너지는 자리에서 피어난 신뢰의 흔적이다.
정의가 사라진 듯 보이고,
악한 자가 승리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이 보고 계실 것이라는 희미한 희망.
그 믿음이 그를 지탱한다.
함석헌 선생은 말한다.
“불의가 이기는 것 같을 때 의인은 묻는다.
‘어찌하여?’ 그러나 그 ‘어찌하여’가 역사를 움직이게 하는 기도다.”3)
그러므로 욥의 질문은 단순한 원망이 아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끝내 이어가려는 몸부림이다.
그는 침묵하면서 인내하고,
동시에 외치며 저항한다.
그의 믿음은 단순한 확신이 아니라,
절망을 끌어안고도 끝내 하나님을 놓지 않는 집요함이다.
그 집요함이 오늘 우리를 다시 하나님 앞으로 이끈다.
주:
[1] Richard Rohr, 『Job and the Mystery of Suffering – Spiritual Reflection』,A Crossroad Book, 1996, p.126. ‘The many faces of poverty’중에서
[2] 김용규, 『신』, Ivp, 2018, 4부 8장 ‘침묵하며 외쳐라’ pp.666~672. 발췌 요약.
[3]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 한길사, 초판 1948, 개정판 다수, ‘역사를 움직이는 힘’ 장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