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증언, 그리고 은폐된 동행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아니 에르노의 책들을 따라 읽다 보면, 한 가지 분명한 흐름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의 글은 화려한 문체나 거대한 서사가 아니라, 기억을 기록하는 일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빈 옷장』에서 시작된 개인의 기억은 『사건』에서 사회적 증언으로, 『한 여자』에서는 어머니의 죽음을 통한 세대의 기억으로 확장된다. 마치 성경이 개인의 이야기에서 민족의 역사로, 그리고 공동체의 신앙 고백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기억에서 증언으로
에르노는 단순히 기억을 적지 않는다. 기억을 증언으로 바꾸어낸다.
『사건』에서 불법 임신중절을 기록할 때,
그녀는 개인적 고통을 넘어 한 시대의 부조리를 드러내는 증언자가 된다.
『한 여자』에서도 어머니의 치매와 죽음을 기록하면서,
그것을 “내 이야기”가 아닌 “우리의 이야기”로 바꿔 놓는다.
딸아이가 읽고 오래 전부터 책꽂이 한 구석에 꽂아놓았던 책,
나에게는 외면당했던 『한 여자』는 마땅한 읽을거리를 찾지 못한 어느 날 밤, 나에게 나가왔다.
그 책을 단숨에 읽고 아니 에로노라는 작가에게 빠져들었다.
갑자기, 느닷없이.
신앙의 길도 그렇지 않는가?
다메섹 도상에서 회심한 바울이나 광야의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난 모세나 갑자기, 느닷없이.
그 분을 만나고 빠져들어간다.
사실주의의 힘
에르노는 꾸며내지 않는다. 감정을 억지로 덧씌우지도 않는다.
그녀의 문장은 건조할 정도로 담백하다. 그래서 그녀의 책을 읽어가는 데에는 무료함이라는 것을 참아낼 인내심이 요구된다.
그러나 그 담백함 속에서 오히려 진실이 드러난다.
『사진의 용도』에서 그녀는
“사진은 부재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현존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사진이 사라진 순간을 증언하듯, 글쓰기도, 신앙도, 삶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듯하지만, 그 자리에 분명히 존재하는 무엇이 있는 것이다.
그녀의 책을 읽을수록 '다시는 그녀의 책을 집어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깊어졌다.
『한 여자』와 『사진의 용도』,『사건』까지는 역시 '노벨문학상'에 걸맞는 작품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탐닉』,『집착』,『카사노바호텔』,『바깥 일기』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사실주의 글쓰기라는 것이 그리 매력이 없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객관적인 사실을 기술한다는 것, 그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러나 그녀의 최초의 소설『빈 옷장』을 마지막으로 읽으면서 이 모든 것들이 하나로 엮어짐을 알게 되었다.
의도하지 않게 그녀의 최초의 소설을 맨 마지막으로 읽게 되었는데, 거기에서 그녀의 글쓰기의 날줄과 씨줄의 결합을 보게 된 것이다.
모르겠다.
그녀의 신간이 출간된다면 기꺼이 그 책을 집어들지는.
그러나 아마도 궁금해서라도 그 책을 분명히 집어들고 책장을 넘길 것이다.
은폐된 동행
에르노의 후기작들은 종종 독자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탐닉』이나 『집착(몰두)』처럼 욕망과 질투를 기록한 책들, 『바깥일기』처럼 사소한 메모들.
하지만 그 속에도 하나의 메시지가 숨어 있었다.
나는 목사이므로 하나님의 침묵과 부재도, 사실은 은폐된 동행이라는 메시지를 읽었다.
사소하고 부끄러운 순간까지도 우리의 삶을 이루듯, 신앙의 길에서도 하나님은 늘 함께하시지만 때로는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곁에 계신다. 침묵이 곧 부재는 아니다. 오히려 더 깊은 방식의 임재일 수 있다.
그녀의 글쓰기는 그런 방식이었던 것이다.
오늘, 마지막처럼
『집착』에서 에르노는 말한다.
“나는 내가 쓴 글이 출간될 때쯤이면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글을 쓰고 싶었다.”
이 문장은 신앙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만약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나는 어떻게 믿음을 고백하며 살 것인가?
우리는 흔히 내일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그러나 같은 날은 단 한 번도 주어지지 않는다.
성경이 강조하는 것도 결국 오늘의 믿음, 오늘의 순종이다.
외설스러운 듯한 그녀의 사실주의적인 글쓰기, 그런데 정말 그녀의 고백처럼 내가 쓴 글이 출간될 쯤에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보다 더 외설적인 글쓰기를 하지 않았을까? 그 믿음이 없기 때문에 가식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는 것이겠지.
아니 에르노의 글쓰기는 우리에게 말한다.
기억하라.
증언하라.
오늘을 마지막처럼 진실하게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