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경상북도 안동은 여러 가지 특산물로 유명하지만 '안동포'를 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안동포는 올이 가늘고 빛이 누런 베를 가리키는데, 짜임새가 가늘고 고와서 삼베 중 최고급품으로 친다.
지금은 중국산에 밀려서 고전하고 있지만, 여전히 안동엔 전통적인 방법으로 포를 짜는 이들이 있다.
'안동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함은 아니다.
한올 한올 한 땀 한 땀 이어져 마침내 한 필 두 필의 포가 되어 삼베옷을 짓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 필의 베를 짜기 위해서는 수많은 수고가 들어간다.
우리의 삶도 수많은 수고가 들어가고, 마침내 지금의 나는 그 모든 수고의 결과물인 것이다.
수작업으로 포를 짜면 숙달된 분이 1년에 안동포 5필 남짓 짤 수 있다고 한다. 5필이라는 양은 겨우 수의 한 벌 지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이다. 그런데 수의를 만들려면 부득이하게 잘려나가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토록 애써 지은 포이지만 삼베로 옷을 만들 때 잘려나가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많은 상징을 담고 있다.
나는 여기서 우리 삶을 지으려면 우리가 수고한 삶의 일부분을 잘라낼 수도 있어야 한다는 상징을 본다. 수고를 생각하면 아깝지만, 그것을 잘라내지 않으면 삼베옷을 만들 수 없듯이 우리의 인생을 만들어갈 수 없다.
이토록 귀하게 만들어진 것들이지만 ,
잘려나가는 과정을 통해서 한 벌의 수의가 만들어지고 삼베옷이 만들어진다.
잘려나가는 과정은 통과제의다.
잘려나간 것들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워낙 귀한 것이니 그 작은 조각들을 모아 또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낸다.
우리의 삶에서 때론 거세당하듯 사라지는 듯한 삶의 조각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이 잇대어져 또 다른 삶의 한 부분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내 삶에서 진정 없어야만 하는 것들이 하나 둘 제거되고, 아무리 작은 삶의 편린이라도 의미 있는 것들은 빛나게 되는 것이다.
이런 믿음이 없다면 어쩌면 우리의 삶의 너무 버거워 놓아 버려야 할지도 모른다.
아직 한올 한올 한 땀 한 땀 우리의 삶은 짜지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하나의 포가 되고, 하나의 옷이 되기까지는 인내하는 시간,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조바심에 무릎 꿇지 말고 천천히 그렇게 하루하루 견디어 내다보면 어느 새 뭔가를 만들 수 있는 삶이 되었음에 감사하게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희망이지만, 이런 희망조차도 없다면 우리는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겠는가?
요즘은 전통방식으로 만들어지는 포가 기계로 만드는 것이나 수입산에 밀려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가장 큰 요인은 가격경쟁력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삶도 가격경쟁력, 즉 돈이라는 것과 환산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소소한 의미 있는 삶들은 아무런 의미 없어 보일 수도 있다. 미련해 보이지만, 자본의 논리에서 한걸음 떨어져야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될 수 있다.
조금 천천히 가면 어떠한가?
우리의 삶은 순식간에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땀 한 땀 이뤄지는 것이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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