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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Feb 12. 2016

봄비가 오셨어요

#41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봄비 오는 날(능내리 다산유적지)


봄비가 오신다.

긴 겨울 어서 가라고 봄비가 오신다.

봄비 오신 후 꽃샘추위 두어 번이면 봄 오겠지.

봄비 오시는데 마중을 나가야 봄님도 빨리 오시겠지.


한강

아직은 봄이 먼 듯 얼어있는 한강.

저기 얼음 위로 난 길의 끝은 어딜까?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그 끝은 얼음의 끝이 아닐까?

저 길 끝에는 봄님이 계신다.


봄비가 만든 비이슬


봄비는 나뭇가지를 적시고,

연록의 새싹이나 꽃을 피우기 전에도 한번 아름다운 보석을 달고 봄을 미리 보라고 한다.

비이슬 속에 새겨진 나무,

비이슬 속에 나무 있고, 물이 꽉 찬  나무속에는 봄님 있다.


버드나무

버드 나뭇가지에 물이 가득,

저 나뭇가지를 잘라 호드기를 만들면 그 소리에 봄님 잠 깨어온다.

얇은 가지는 '삐이이~', 굵은 가지는 '뿌우~'

봄님이 호드기 소리에 잠 깨어 온다.


비이슬


지난가을 꽃이 진 후에 씨앗도 모두 날려버렸어.

그리고 나는 이제 다 끝난 줄 알았어.

겨울을 보내고 나니 너무 앙상하고 초라해서 이젠 끝이다 싶었지.

그런데, 봄비가 이렇게 큰 선물을 주네?


비이슬


겨우내 꽃눈 틔우느라 바빴어.

저기 앙상한 가지마다 꽃눈이 보이니?

거기서 연록의 이파리도 나오고 하얀 꽃도 피어날 거야.

이제 조금만 기다려. 곧 봄님이 오시니까.


비이슬


씨앗을 날려버리고 이젠 좀 짐을 벗었나 싶었어.

그런데 봄비가 내리더니 내 몸이 무거워졌네?

이제 삶의 끝자락인데 이런 멍에를 지게 하다니 원망스러웠지.

그런데, 이 멍에는 아주 쉽고 가볍고 즐거운 멍에라는 것을 알았어.


강아지풀


내가 이렇게 남아있을 이유가 있을까?

지난겨울 칼바람에 시달리면서 이런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

어서 흙으로 돌아갔으면 간절히 소망했지.

그런데 이런 날 기어이 오고, 이젠 정말 기꺼이 흙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단풍나무


봄비는 왔고,

비이슬을 맺혔고,

나는 거기에 있었지.

조금은 놀랐지만, 거기에 있다고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니었어.


느티나무와 직박구리


지붕도 없는 집에서 온 겨울을 났지.

그런데 이제 겨울의 끝자락인가 보네.

"봄님, 두 날개 벌려 환영합니다!

어서 오세요. 봄님."


갈대와 박새

눈이 아니고 비가 올 정도로  따뜻해진 거네.

입춘도 지났다고 들었고, 까치설날도 지났다고 들었어.

그러니까 이 비는 봄비네?

이제 죽은 듯 잠을 자지 않아도 될 날이 멀지 않은 거지?


흰말채나무

이름하고 다르게 엄청나게 붉지?

너무 매끈거려서 봄비도 품지 못하고 있어.

그래도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숨기지 못해 이렇게 붉어.

다들 묵묵히 겨울을 참고 견디는 데 나만 봄님을 기다리나 부끄러워서 붉은 거야.


버들강아지


뽀송뽀송 보들보들,

강아지 털보다 더 부드러운 버들강아지가 피어났으니 이미 봄은 온 거야.

봄을 보는 것, 볼 것이 많아 봄,

봄은 짧아, 지금부터 봄님을 볼 준비를 해야 겨우 봄을 볼걸?


두물머리와 갈대




봄비가 오셨습니다.

능내리 다산유적지와 남한강 북한강이 만나 한강을 이루는 두물머리를 다녀왔습니다.

꽃샘추위도 남았겠지만, 오는 봄을 어찌할 수 없겠지요.

봄은 봄인데 세상의 소식들은 어수선하기만 하여, 겨울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봄비를 맞으며 봄이 오듯 우리네 삶에도 봄이 올 것이라 생각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봄이 오고 있네요. 아니, 이미 왔네요.






#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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