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봄비가 오신다.
긴 겨울 어서 가라고 봄비가 오신다.
봄비 오신 후 꽃샘추위 두어 번이면 봄 오겠지.
봄비 오시는데 마중을 나가야 봄님도 빨리 오시겠지.
아직은 봄이 먼 듯 얼어있는 한강.
저기 얼음 위로 난 길의 끝은 어딜까?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그 끝은 얼음의 끝이 아닐까?
저 길 끝에는 봄님이 계신다.
봄비는 나뭇가지를 적시고,
연록의 새싹이나 꽃을 피우기 전에도 한번 아름다운 보석을 달고 봄을 미리 보라고 한다.
비이슬 속에 새겨진 나무,
비이슬 속에 나무 있고, 물이 꽉 찬 나무속에는 봄님 있다.
버드 나뭇가지에 물이 가득,
저 나뭇가지를 잘라 호드기를 만들면 그 소리에 봄님 잠 깨어온다.
얇은 가지는 '삐이이~', 굵은 가지는 '뿌우~'
봄님이 호드기 소리에 잠 깨어 온다.
지난가을 꽃이 진 후에 씨앗도 모두 날려버렸어.
그리고 나는 이제 다 끝난 줄 알았어.
겨울을 보내고 나니 너무 앙상하고 초라해서 이젠 끝이다 싶었지.
그런데, 봄비가 이렇게 큰 선물을 주네?
겨우내 꽃눈 틔우느라 바빴어.
저기 앙상한 가지마다 꽃눈이 보이니?
거기서 연록의 이파리도 나오고 하얀 꽃도 피어날 거야.
이제 조금만 기다려. 곧 봄님이 오시니까.
씨앗을 날려버리고 이젠 좀 짐을 벗었나 싶었어.
그런데 봄비가 내리더니 내 몸이 무거워졌네?
이제 삶의 끝자락인데 이런 멍에를 지게 하다니 원망스러웠지.
그런데, 이 멍에는 아주 쉽고 가볍고 즐거운 멍에라는 것을 알았어.
내가 이렇게 남아있을 이유가 있을까?
지난겨울 칼바람에 시달리면서 이런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
어서 흙으로 돌아갔으면 간절히 소망했지.
그런데 이런 날 기어이 오고, 이젠 정말 기꺼이 흙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아.
봄비는 왔고,
비이슬을 맺혔고,
나는 거기에 있었지.
조금은 놀랐지만, 거기에 있다고 누구에게나 보이는 것은 아니었어.
지붕도 없는 집에서 온 겨울을 났지.
그런데 이제 겨울의 끝자락인가 보네.
"봄님, 두 날개 벌려 환영합니다!
어서 오세요. 봄님."
눈이 아니고 비가 올 정도로 따뜻해진 거네.
입춘도 지났다고 들었고, 까치설날도 지났다고 들었어.
그러니까 이 비는 봄비네?
이제 죽은 듯 잠을 자지 않아도 될 날이 멀지 않은 거지?
이름하고 다르게 엄청나게 붉지?
너무 매끈거려서 봄비도 품지 못하고 있어.
그래도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숨기지 못해 이렇게 붉어.
다들 묵묵히 겨울을 참고 견디는 데 나만 봄님을 기다리나 부끄러워서 붉은 거야.
뽀송뽀송 보들보들,
강아지 털보다 더 부드러운 버들강아지가 피어났으니 이미 봄은 온 거야.
봄을 보는 것, 볼 것이 많아 봄,
봄은 짧아, 지금부터 봄님을 볼 준비를 해야 겨우 봄을 볼걸?
봄비가 오셨습니다.
능내리 다산유적지와 남한강 북한강이 만나 한강을 이루는 두물머리를 다녀왔습니다.
꽃샘추위도 남았겠지만, 오는 봄을 어찌할 수 없겠지요.
봄은 봄인데 세상의 소식들은 어수선하기만 하여, 겨울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봄비를 맞으며 봄이 오듯 우리네 삶에도 봄이 올 것이라 생각하며 위로를 받습니다.
봄이 오고 있네요. 아니, 이미 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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