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김민수의 '소소한 풍경 이야기'
모든 물이 모여드는 곳, 물의 종착역인 바다가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일 것이다.
낮음, 섬김.
이런 단어들이 어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자발적인 섬김이나 자발적인 낮아짐 혹은 자발적인 가난 같은 것들은 이제 고리타분한 말이 되어버렸다.
이 시대에 그렇게 살았다가는 바보라는 소리 듣기 십상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흔하지 않지만 이런 바보를 덕분에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바보들에게 감사를.
바다는 세상에서 가장 낮으므로 세상의 모든 물이 흘러들어 세상에서 가장 넓은 곳이 되었다.
풀잎에 맺힌 작은 이슬방울이 부는 바람에 땅으로 떨어진다.
수많은 이슬방울들이 모여 물 한 방울이 되고, 그 물방울들은 모이고 모여 계곡으로 흘러들고,
계곡은 수많은 실개천을 만들고, 실개천은 강을 만들고 강은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마음이 넓다는 것은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까지 내려갈 수 있다는 의미다.
소인배들은 낮은 자리보다 높은 자리만 탐하므로 모사꾼의 마음은 얻을지 몰라도 참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
바다의 끝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하늘과 맞닿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과 세상에서 가장 높은 하늘의 만남, 그것은 신비다.
가장 낮음으로써 가장 높은 것과 조우할 수 있다는 것을 바다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바다, 그들은 생명의 어머니가 되었다.
생명의 어머니이기 위해서 파도는 폭풍도 마다하지 않는다.
저 바다 깊은 곳까지 송두리째 뒤집어지는 아픔을 마다하지 않음으로 바다는 새로워진다.
많은 이들이 해돋이를 보기 위해 바다를 찾는다.
그들이 간절히 보기 원하는 것은 오메가의 순간이다. 알파의 시간에 오메가를 염원한다는 것,
그것은 알파와 오메가는 서로가 서로에게 끝이 아니라 무경계로 연결되어있음을 상징하는 것이다.
낮은 것과 높은 것, 바다와 하늘의 조우도 그러하다.
가장 낮아졌을 때 비로소 가장 높은 것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은 끝없이 낮아지는 것, 그것 외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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